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

조계산 선암사 입구 
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여름 사진입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 입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아치교인 이 다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최근 이층 누각 보수가 끝나고 다리아래로 보이는 멋진 모습이 그림같이 예쁩니다.

1963년 9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이 승선교를 어제 조계산 등산하면서 아침에 담은것입니다.


다리의 제원을 찾아 보니까 길이 14m, 높이 4.7m, 폭 4m입니다.

조선 숙종 39년(1713년)호암화상이 6년게 걸쳐서 완공한 다리이군요.
기저부(基底部)에 별다른 가설이 없이 자연 암반위에 세운 홍예(虹預)로서 하단 초기부터 곡선이 시작되어 다리 전체가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는 하나의 아치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필자의 주석으로 이 다리는 사바세계의 고통에서 부처의 세상 피안의 나라로 건너가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다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

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

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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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암 가는길에..


통도사 암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백운암은 해발750m의 고도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이다.

영축산을 등산하는 함박등을 거치는 등산코스에 자리잡은 곳이기도해서 산인들에겐 잘 알려진곳이며 쉼터이기도 합니다.


통도사에서 이 암자를 가려면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하지만 가는도중에 만나는 기막힌 심산의 자연을 보면 올라온것이 잘했다고 충분히 느낄수있습니다.


백운암 가는길에 담은 사진 몇장을 올립니다.

심산의 경계심 없는 다람쥐나 숲깊은 계곡의 물소리나 이름모를 울창한 수림과 누가 쌓은것인지도 모르는 돌탑들 , 그리고 나무에 매달려 나부끼는 수많은 명언들이 이 코스를 걷는사람들의 눈을 즐겁고 바쁘게 합니다.


백운암에서 이정표로는 700m정도에 함박등이 있다고 표시되어서 함박등까지 다녀왔다.

함박등거리를 별것아니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간월재에서 영축산으로 내려와 본 경험때문에 오늘은 함박등에서 쉬었다가 백운암으로  그냥 하산했습니다. 

백운암가는길은 통도사에서 출발한다면 극락암까지 완만한 평지이긴 하지만 거리상으로 30분이상 걸리는 거리입니다.극락암에서 백운암가지는 일반인으로 1시간40분정도 걸리는 거리로서 약 1.5~6Km되는것으로 짐작됩니다.

만약 자동차로 극락암지나서 백운암가는 길로 접어들어 적당한곳에 주차하고 오른다면 1시간이내로 오를수도있을것입니다.


백운암가는길백운암가는길


백운암 가는길에 만난 다람쥐백운암 가는길에 만난 다람쥐


백운암 가는길에 백운암 가는길에


백운암 가는길에 백운암 가는길에


백운암에서 본 서운암 장경각 백운암에서 본 서운암 장경각


백운암백운암

백운암백운암



2015/05/06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사찰/문화유적/] - 고찰(古刹)에서 담은 녹슬은 사진


2015/04/09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사찰/문화유적/] - 통도사의 봄


2015/02/15 - [블로그일기] - 통도사(通度寺) 홍매화(紅梅花)


2015/01/11 - [철학/문학/교양/상식] - 대한불교 조계종의 한국 8대총림(叢林)


2014/11/03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사찰/문화유적/] - 사명암 탐방-통도사


2014/09/01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사찰/문화유적/] - 백운암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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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古刹)을 다니면서 작은 부분을 살펴보면 정감넘치는 좋은 미술 소품이나 좋은 구조물의 일부가 참 많습니다.

석물이나 목각 구분없이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소박하지만 볼 수록 정감이 넘치고 해학적이기도한 미술품들은 많습니다.

꼭 미술품으로 만들진 않았겠지만 필요소품 그자체가 좋은 미술품일것입니다.
우리들의 옛 생활의 단면들이 고찰의 문틀에, 문고리에, 문종이에, 지붕에 그대로 남아있어 옛날 고향의 어린시절 보던 고가를 떠 올립니다.


보는대로 정감이 들어서 담은 사진입니다.


사찰(寺刹)미술사찰(寺刹)미술

옛날문살옛날문살

거북이자물쇠거북이자물쇠

석각미술석각미술

옛날 경첩옛날 경첩
옛날 경첩

옛날 문살옛날 문살

목각 미술목각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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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성불사를 참배하고 둘레길을 걸으면서 몇장 담은것입니다.

성불사는 장산 중턱의 해발고도가 높은곳이기때문에 기온도 아래보다 좀 낮아서 여름에는 숲속 피서지로 좋지요.

반여동쪽으로 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둘레길의 초입이라서 성불사를 가금 들리게됩니다.

멀리서 봐도 산중턱에 노랗게 보이는 황금색 대불도 가까이 볼수있습니다.
성불사입구의 수국과 산수국은 초여름 보기좋은 꽃이고요..


둘레길 조금 올라가면 전망대에서 보는 마린시티전경과 광안대교 초입은 멋집니다.
날씨가 좋아서 마린시티 요트들이 한꺼번에 나들이라도할때는 그림이 훨씬 좋지요..

 

산수국산수국

성불사 산수국성불사 산수국

수국수국

성불사성불사

광안대고 초입광안대고 초입

마린시티마린시티

성불사 대불성불사 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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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진산 팔공산을 오르면 동봉 바로아래 산허리에 거대하고 아름다은 석불을 보게됩니다.

동봉을 오르기 직전 동봉을 뒤로하고 세워진형태의 서향 석불로서 전체 높이는 무려 6m에 달하는 거대한 석불입상입니다.

자세히보면 얼굴이 5각형 형태로 두 볼이 풍만하게 표현되었으며 자세히보면 미소를 머금은것 같이 봅입니다.

남여를 구분한다면 여성으로 보이는 불상이며 좀 비대칭으로 보이는 부분은 오른팔이 크게 묘사되어있는데 이정도를 만드는 조각 장인이 실수로 오른팔을 이토록 크게 만들리는 없을것이며 불교적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손가락의 길이도 고르지 않아서 실제적인 사람으로 생각 할때 조금은 부자연스러울 수가 있지만 조각가가 대충 마무리를 어물쩡 넘긴 작품이라고는 보지 않으며 이 표현속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을것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왼팔은 무었인가를 들고 가슴 앞까지 올리고 있습니다.
약사여래상으로 볼 때 약병같은 종류로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발가락이 보이는 맨발이며 옷자락 밑으로 나와있으며 또렷하고 조화롭게 표현되어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아 통일 신라시대의 유작으로 추정한다고 보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진 않으며 감히 훨씬 이전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팔공산 중앙봉에 있는 이 불상의 명칭은 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입니다.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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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교동 고분군을 걷는다. 


이곳을 바라만보고 지나치다가 오늘 시간이 되어 이 거대한 무덤사이를 차분한 마음으로 걷는다. 


이 땅에서 사라져간 굵직굵직한 지배자들의 흔적 중에서도 창녕지역의 비화가야(飛花伽倻)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곳 교동 고분군은 이미 일본 강점기에 발굴되고 거의 모든 유물은 일본으로 빼돌려져 바다 건너로 사라지고 없다. 이 거대한 고분들은 속 빈 강정같은 느낌을받는다. 


그래도 고분들 사이를 걸어가며 아득한 옛날 5세기 전후의 어느 맑은 날 비사벌 국의 위엄있는 한 왕이 환두대도를 차고 신하들과 함께 어버이의 묘소를 방문했던 어느 날을 상상하며 내가 거기에 있었을 것 같은 착각을 하며 봉분 사이를 걷는 호사를 누린다. 


이미 일본은 소위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설정하고 짜깁기로 역사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썼지만 비화가야(飛花伽倻)기의 유물들이 원래 일본 땅이라는 어떠한 증거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고령에서도 똑같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구 발굴해서 이 땅에서 수많은 왕의 무덤을 훼손하고 부장품들을 도둑질해갔다. 


한반도에 일본이 지배했고 그들의 지배 부가 있었다고 우기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추종하는 일본인들의 허무맹랑한 집염으로 무덤들 파고 회손했지만 진실은 그들에게 굴욕만 안겨준 현장이다. 


도굴로 인해서 고분의 속은 텅 빈 채로 비화가야는 시간 속에 잠들고 있는 역사로 남아있다. 

지금도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야유물 가운데 창녕이 출토지로 된 많은 유물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금동관, 금동제 관모(冠帽), 금은장식 환두대도(環頭大刀) 같은 왕들의 위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우리의 역사 유물들은 하루빨리 되돌려 받아야만 한다. 


이 땅에 존재했던 비화가야-비사벌국이라는 신라와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5세기 중반에 엄연히 존재했던 힘과 권세가 막강한 지배자가 통치했던 하나의 국가로서의 이곳 역사가 올바르게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18년 초봄 아득한 역사의 흔적이 엄연한 교동 고분군 탐방기를 마친다.

창녕고분군창녕고분군

교동고분군교동고분군

 비화가야(飛花伽倻) 고분군비화가야(飛花伽倻) 고분군

#창녕고분군 #교동고분군 #비화가야 #임나일본부설 #역사왜곡 #왕들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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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 사는 만덕터널 위 금정산 계명봉 아래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벽 아래 자리 잡은 부산에서 석불이 가장 많은 사찰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본인이 한창나이일 때 휴일 놀러 가곤 했을 때 병 품 암이라고 불리던 곳임으로 대략 1980년대까지 병풍 사라고 하거나 병품암으로 불리던 사찰입니다. 


사실 웬만큼 발품 팔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절 마당까지 자동차가 들어갈 수가 있으며 일반인들이라도 만덕 터널에서 상당한 경사로를 자동차로 갈 수가 있어서 접근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명칭이 석불사로 변경되었고 사실 병풍사라는것을 아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자연암벽에 도드라지게 새긴 대단한 불상들은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역사(力事)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리 오래된 석물은 아니지만, 석물이 거대하면서도 정교하고 또 일반인이 봐도 그 예술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마애불상 들입니다. 


정확한 행정구역으로 본 주소는 부산광역시 북구 동래구 만덕1동 만덕고개길 143-79 석불사입니다. 


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



필자는 이 아름다운 마애 불상과 여러 석조물이 좋고, 

바위벽 양쪽에 새겨진 불상들 사이에서 참배하는 기분도 좋고, 


덤으로 이곳까지 오르면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어 건강도 좋아지며 이곳에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 암석에서 나오는 생명수 같은 약수가 좋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찾는 곳입니다. 


금정산에는 이곳 말고도 암벽 사이에 근사하게 자리 잡은 고당봉 아래 미륵사도 있고 동편 저 아래 범어사도 있지만 금정산 북쪽 기슭의 만덕터널 위 역사 깊은 만덕 사지를 지나서 8부 능선까지 오르면 석벽에 자리 잡은 석불사는 수많은 석불 때문에 점점 유명해 지고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오는지는 모르지만 석불사까지 발품 팔아 올라오는 것을 종종 봅니다. 
사찰아래 갈림길에는 영어로 된 이정표가 있는것을 보면 많은 외국인이 불편해 하는것을 감안했을것입니다.


거대한 자연석벽에 새겨 놓은 불상들은 여느 사찰에서 보지 못한 장관(壯觀)입니다. 

불사채들은 그리 웅장하거나 특별한 것은 없으며, 대웅전(大雄殿), 칠성각(七星閣) 등과 종무소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 너르지 않은 마당 끝의 종각 앞을 지나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 영각(獨 聖 ?靈閣)이 있는데 이곳에서 좌우 암벽의 마애불 사이로 내려다보는 경관은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을 찾게 해 줍니다.


필자는 이곳의 마애불 명칭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석벽의 좌우에 사천왕(四天王)상이 있고 좌측 큰 암벽에 보살(菩薩-菩薩 乘菩薩乘)상 나한(羅漢-癩漢)상이 함께 새겨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을 방문 할 때 마다 조금씩 공부하기로 하며 ..


가장 중앙에는 자비의 상징인 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님의 큰 불상이 온화하게 내려다보며 그 앞에서 참배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사천왕(四天王)사천왕(四天王)

사천왕(四天王)사천왕(四天王)

석불사의 조각석불사의 조각

석불사의 조각석불사의 조각

석불사의 조각석불사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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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傳) 중에서도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역사서이지만 불교적 내용이 재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삼국유사 제5권에 보면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이라는 3페이지 분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문을 사진으로 올립니다.

내용은 풀어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지만 결과론 적으로 말한다면 욱면이라는 여자 종이 염불정진해서 서방 불국정토로 산 몸으로 성불해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승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삼국유사(三國遺事)제 4,5권

삼국유사(三國遺事)제 5권삼국유사(三國遺事)제 5권


내용은 위와 같지만, 그 과정이 상당히 적나라하고 욱면이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염불 수행을 지극히 해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성불하고 극적인 승천을 하는 내용이 불교국가 신라에서 불자가 가져야 할 평등사상을 잘 이해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제5권에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편을 보면 대략 저자 일연스님은 3페이지를 할애해서 쓴 것인데 내용을 풀어 보면 신라 경덕왕 때 강주(康州)에서 일만일 기도회를 조직하고 절을세워 기도하던중에 한 신자의 여자종이 어려운 고통중에서도 기도 정진하고 살아서 성불하여 여러사람이 보는 가운데 서방 불국정토로 승천한 내용이다. 

어떤 곳에 보면 강주를 한자 剛州라고 말하는데 내가 본 삼국유사 동래 범어사 본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康州(강주)로 쓰여있다.


康州(강주)는 지금의 진주이지만 만약 剛州라고 쓰였다면 지금의 순안인 것이다.


내용 풀이

남자 신자(종을 거느릴 정도의 부유한 사람들) 몇십 명이 서방정토를 정성껏 구하고자 주의 경계에 미타사를 세우고 1만 일 기도를 하는 계를 만든다.


주해:
강주(康州)는 신라시대의 행정 구역 구주(九州)중의 하나인데 지금의 진주(晉州)로 본다.

통일신라때에는 거열주(居列州)라고했으며 문무왕 3년 663때이다,
청주(菁州)로 불릴때는 신문왕 5년 685때이다.
강주(康州)로 불릴때는 경덕왕 16년때이다.
이후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부터 진주(晋州)라고 불린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까지는 강주(康州)라고 하다가 조선때 행정구역 12목으로 나누면서  진주목(晉州牧)이 되었다가 이후 1895년에 진주부(府) 진주면으로 된다.


그 때 계원중의 한사람인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여자 종이 있었고 그 이름이 욱면이다.
욱면은 주인이 기도하러 갈때마다 함께 따라가서 마당에 서서 승려들 염불을 따라서 염불을 했다.


주인은 종 주제에 염불하러 꼬박 꼬박 오는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염불하러 오려거든 매일
곡식 두 섬을 다 찧고 염불하라고 한다.


욱면은 불만없이 초저녁에 벌써 다 찧어 놓고 절에 가서 열심이 염불한다.
우리의 속담에 "내 일이 바빠서 큰집 방아 서두른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 속담의 유래가 바로 욱면이 매일 방아찧는다고 빈정대는 사람들에게 한 말인것이다.

욱면은 절 마당에 말뚝을 세워서 두 손바닥을 뚫어 새끼줄로 꿰어 달아매고 합장해서 좌우로 흔들어 자기를 추스리고 염불에 정진했다.


개인생각:
모르긴 해도 욱면의 주인이 나무기둥에 욱면을 매달아서 고통으로 벌 준 것을 좋게 쓴 것인지도 모른다.
욱면은 손바닥을 둟어 묶인째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뒤에 이 주인도 절을 짖고 좋은 불자가 되었기 때문에 좋게 기술한 것으로 생각해 본다. 


기간은 기도한지 약 9년쯤이라고 하는데 하늘에서 "욱면랑(郁面娘)은 당(堂)안으로 들어와서 염불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당시 함께 염불하던 절의 승려들이 듣고 욱면을 당에 들게해서 정진하게 했다.

구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쪽 하늘로 부터 음악소리가 들려오더니 욱면의 몸이 솟구쳐 올라서 집 대들보를 뚫고 나가 서쪽으로 교외(郊外)로 가다가 부처가 되어 연화대(蓮化臺)에 앉아 빛을 발하며 음악소리를 남기고 떠난것이다.


"그 법당(堂)에는 지금도 구멍이 뚫어진 곳이 있다고 한다." 까지만. ..신발 덜어진곳 등..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삼국유사(三國遺事) 제5권에 있는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을 찾아 본 내용입니다.

좋은 불자가 죽어서 성불하거나 극락왕생 불국정토로 가는경우는 많지만 살아서 육신과 함께 성불하는 극적인 경우는 드뭅니다.

불교국가 신라에서는 몇번 기록으로 나타나는데 욱면낭자의 부처가 된 경우가 가장 드라마틱한 기록입니다.  

여기의 사진은 복사 복제를 불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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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5세기 전후반해서 현재의 기장 청강리 부근에 발달한 자연마을에서 출토된 유물입니다.
청강리 대라리 덧널무덤에서 발굴된 새모양 토기인데 아무리 봐도 충경적이고 해학적인 모양입니다.

1500년도 더된 시대의 사람들을 미개인이라고 무시했다면 잘못된 생각일수도 있다고 느껴집니다.

현대 어느 미술전시회에 출품해도 금상정도는 먹을것같은 특이한 구성에 전혀 색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새모양 토기인것은 인정하지만 이게 무었을 하는 물건이냐고 묻는다면 모른다입니다.

미술품일까요? 술잔일까요? 향로일까요? 무당이 신을 부르는 도구일까요?


이 토기 모조품은 여러번 봤지만 오리지널을 기장 박물관에서 보고 담아온 것입니다.
오리지널이 아닐수도 있습니다.ㅎㅎ

본 고장 이라고 해서 꼭 진품을 진열하는것은 아니지요. 어떤것은 서울 중앙 박물관에 가져다 놓는 경우를 보기 때문에...

 


새모양 토기새모양 토기




2015/05/24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역사/고전] - 아름다운 분청사기(粉靑沙器)

2014/09/29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 - 가산리 마애여래입상-架山里磨崖如來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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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사자상이라고 붙혔지만 이 석상이 사자상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동물로서는 사자와 비슷하기 대문에 사자상이라고 할 뿐입니다.


석상은 추상적인 동물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기때문에 이 석상이 나타내는 동물이 정확히 무슨 동물인지는 모른다는 말입니다.


해인사를 들렸다가 나오면서 칠불보관(七佛寶官)이라는 전각엘 들렸는데 석탑좌우에 배치된 석상을 담아온것입니다.
워낙 빠듯한 시간으로 삼사순례를 하는 과정이라서 자세한 설명을 찾아 볼 시간이 없었고 그냥 카메라에 담기만해도 바빳던 날입니다.


집에와서 보니까 상당히 근사하게 느껴져서 블로그에 올리는 것입니다.


사자상사자상

탑과 석상탑과 석상

탑과 석상탑과 석상

칠불보관칠불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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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통도사 입구에 보면 얼마나 오래된 나무인진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고사목 등걸이 커다란 구조물처럼 서있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예술작품처럼 서있었는데 최근에 그 크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네요.

세월의 풍화에 고사목의 마지막 뼈대까지도 점점 사라져가는것이 아쉬웠는데,


올해부터 고사목 등걸아래에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천년 고사목 등걸이 부활(復活).하는것일까요.

뿌리부분에서 새로운 탄생이 제법크게 자라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썩어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기전에 새로운 탄생인지 부활인지 모르지만 싱싱하게 자라나는 어린 느티나무가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불교의 윤회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것은 사찰의 입구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마도 이곳을 자주 찾아오는 마음과 교통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것인가 봅니다.


고사목의 부활고사목의 부활





고사목의 부활(復活).고사목의 부활(復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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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가 볼때 마다 느낌이 다르고 거대한 가람 경내의 구성과 전각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경내 암자들도 하나같이 독특한 특징을 가진 큰 가람이다.


통도사 큰가람 마당에 심오하게 배치되어 있는 전각들을 다 살펴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각 전각들의 배치나 특징등으로 볼때 여느 사찰과는 확연히 구분되고 뛰어난 예술적인, 또는 최고의 건축미를 가진 대 가람이다.
그래서 국지대찰이란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통도사에있는 전각중에서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두개의 전각을 소개한다.
세존비각과 개산조당이다.
거의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두 전각의 경중에 깊은 뜻이 없을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세존비각 世尊 碑刻

비각은 원래 비석을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간결하게 세운 건물인데 어쩐지 불교적 느낌보단 우리네 풍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여느 비각처럼 비석 주위에 사각형으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대부분의 모양과 다르지 않지만 주위에 닜는 전각들과 잘 매칭되는 예술적 모양을 가지고 있다.


세존비각이라고 현판이 되 있다는것은 세존에 대한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는 말이다 .


그래서 이 비각이 관심이 가지만 아직 비문의 내용은 모른다.

석가세존의 비가 있다는것이 많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기회가 될때 세존비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 볼 것이다.


세존비각 世尊 碑刻세존비각 世尊 碑刻



개산조당(開山祖堂)

세존비각 조금 오른쪽으로 보면 개산조당이 있는데 용화전 옆 서쪽이다.
말할것도 없이 통도사를 창건한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사당으로 이해 하는데 정확히는 이분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으로 들어가는 정문을 말한다.


開山祖堂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문인데 해장보각의 조사문으로서 해장보궁(海藏寶宮)으로 통하는 문의 3칸 건물인데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구조로서 중앙의 칸이 양 측면 칸보다 약간 높게 솟아있어서 "솟을삼문"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현판이 없는 양쪽 문도 두 쪽의 널문이며 여닫을 수 있도록 되있고 건물형식은 조선말기 형식이라고 하며 일반적인 사당(祠堂)에서 볼 수 있는 솟을삼문과 흡사한것으로 본다.



영조 3년(1727)에 창건되엇다고 하는데 몇차례 중수되었는데 현재건물은 고종 4년(1867)에 많이 개축된것이라고 한다.

개산조당(開山祖堂)개산조당(開山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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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암은 통도사 본찰뒤편으로 북쪽 작은 산허리를 넘어서면 너른 벌판이 나오며 이곳 가운데로 작은 다리를 건너 영축산을 바라보고 노송림을 들어서 경사로를 오릅니다.


솔밭길 차도를 한참 지나가면 송림속에 극락암이 나오는데 극락암에서 더욱 영축산자락 가까이 북쪽으로 약 600m정도 더 들어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은 백운암가는길이고 우측은 비로암 가는길입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고 경사로를 오르면 깊은 산속 계곡에서 영축산을 바로 코앞으로 바라보는 지점에 노송으로 둘어쳐진곳에 빼어난 경관으로 비로암이 나타난다.


고려 충목왕 원년 1345년에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창건한것으로 알려지고있는 고찰이다.

이후 선조11년 1578년 태흠대사가 창건한곳으로 알려지고있으며 최근에 원명화상이 중수한 사찰로서 통도사 산문내 부속아자이다.


이곳에 소장된 중요 문화재로 1899년과 1904년에 조성된 아미타구품탱,산신탱,조왕탱등이 경남 유형문화재 제354호로 지전되어 있다. 

 

이곳에는 특별히 북두칠성 신앙을 반영한 북극전이 있으며 이곳에 있던 칠성탱은 현재 성보박물관에 이관되어있다.
칠성탱은 경남유형문화재 3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별자리거 표시되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여시문(如是門)과 3층석탑이 있다.

특히 이곳에서 약500m떨어진 곳에 통도8경으로 꼽히는 비로폭포와 함께 빼어난 암자와 배경으로 영축산이 병풍처럼 서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이곳은 철따라 바뀌는 영축산이 갈아입는 채색옷과 함께 항상 멋있는 전경을 자랑한다.
또 영축산 정상으로 오르는 빠른 등산로의 초입으로 가을이면 등산인들도 많이 찿고있다.

한여름 등산 하면서 들린 비로암의 사진 몇장을 아래에 보여 드립니다.


비로암 풍경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비로암 풍경

비로암 전경비로암 전경

비로암 전경비로암 전경

비로암과 영축산비로암과 영축산






비로암비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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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붕사 탐방기


창녕 유채꽃 봄나들이를 마치고 약간의 시간이 남아서 일붕사 탐방을 했다.

절벽 아래 그리 크지 않은 요사채들이 별로 깊지 않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석굴 대웅전이 있다는데 관심이 간다.


일단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관음전을 들렸다가 다시 석굴대웅전으로 내려왔다.

신선한 느낌이 들고 청아한 분위기가 드는 관음전이 여느 사찰에서 느낄 수 없는 좀 다른 기분이 드는 안온한 곳이었다.


동굴 대웅전을 들어가서 천정을 본 소감은 대단하단 느낌이 든다.

완전 암벽을 뚫어서 만든 너른 공간 저 안쪽에 3불이 모셔져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절터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잠깐이면 충분했으며 입구에 정성 들여 쌓은 석탑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기암절벽이 무슨 형상처럼 느끼는데 병풍처럼 서 있다.

그중에서 유달리 툭 튀어나온 석벽 하나가 마치 코끼리 형상으로 다가온다.

코끼리는 불가에서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코끼리 형상은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늦은 오후에 들린 작지만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드는 사찰 일붕사 탐방을 빨리 끝내야 하는 것은 오늘 유채 축제에서 본 수많은 차들을 생각 할 때 남해고속도로가 심상치 않을 것 같은 우려 때문에 서둘러 나왔다.
아시아 최대의 동굴법다인 대웅전이 색다른것 때문에 이곳을 알게 되었으며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오늘 짬이나서 다행이다.


봉황산 자락 석벽아래 자리잡은 일붕사는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청정로 1180-42 에 위치한 사찰이며 봉황산의 산기(山氣)가 너무 강해서 산아래 굴을 뚫어야 했다고 전해진다.


 일붕사 동굴법당과 바위절벽일붕사 동굴법당과 바위절벽

 일붕사 동굴법당과 바위절벽일붕사 동굴법당과 바위절벽

 일붕사 코끼리 바위 일붕사 코끼리 바위

일붕사 석탑일붕사 석탑

일붕사 일붕사

일붕사  동굴법당일붕사 동굴법당

일붕사  동굴법당일붕사 동굴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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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천주사는 신라 진평왕 때에 창건된사찰이라고 합니다.
일제때 소실되어 정확한 기록이 없다는것이 아쉬운 고찰입니다.

천주산은 대승사와 윤필암과 나옹스님의 출가지인 묘적암도 있습니다.
미륵 세계를 현세에 이루고자 했던 진평왕(眞平王)의 염원이 깃든 사찰로 전해지고 있네요.
사찰을 방문하기 위해 대충 알아본 개요입니다.

현재는 주지 중홍스님이 1985년 관음보살의 현시(現示)를 받고 현재의 터를 잡아 천주사를 재건하며 지금에 르고 있습니다.
1997년에 삼성각을 재 신축하였으며,
2004년에 대웅전을 건립.

현재진행중인 역동적인 불사들로 볼때 번창하리라는 느낌이드는 도량입니다.
대찰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고 안온한 느낌이들어 불자라면 머물고 싶어지는 절이군요..

천주사에 발원하는 문장 한줄을 소개하면, 
이름은 모양과 둘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하늘을 받치고, 하늘을 열어 준다.’ 라고 하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분명 천주산 천주사는 중생의 막힌 삶의 모든 부분을 부처님의 지혜와 관음보살의 대자비로서 밝고 훤하게 열어 줄 것입니다.
라는 글을 http://www.chunjusa.org/temple/info/info_02.html에서 보게 됩니다. 

아래는 천주산 천주사를 방문하며 담은 사진들입니다.
천주사 아래에 천주산 무료 주차장이 있습니다.


천주사 탐방천주사 탐방
주차장에서 조금아래 천주사 들입풍경입니다.
천주산 가는 길이기도 하구요..

천주사 탐방천주사 탐방

천주사 탐방천주사 탐방

천주산 천주사천주산 천주사

천주산 천주사천주산 천주사

천주사 탐방천주산 천주사

천주사 탐방천주산 천주사

천주사 탐방천주산 천주사

천주산 천주사천주산 천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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