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불 사는 만덕터널 위 금정산 계명봉 아래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벽 아래 자리 잡은 부산에서 석불이 가장 많은 사찰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본인이 한창나이일 때 휴일 놀러 가곤 했을 때 병 품 암이라고 불리던 곳임으로 대략 1980년대까지 병풍 사라고 하거나 병품암으로 불리던 사찰입니다. 


사실 웬만큼 발품 팔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절 마당까지 자동차가 들어갈 수가 있으며 일반인들이라도 만덕 터널에서 상당한 경사로를 자동차로 갈 수가 있어서 접근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명칭이 석불사로 변경되었고 사실 병풍사라는것을 아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자연암벽에 도드라지게 새긴 대단한 불상들은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역사(力事)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리 오래된 석물은 아니지만, 석물이 거대하면서도 정교하고 또 일반인이 봐도 그 예술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마애불상 들입니다. 


정확한 행정구역으로 본 주소는 부산광역시 북구 동래구 만덕1동 만덕고개길 143-79 석불사입니다. 


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ILCA-77M2 | Pattern | 1/100sec | F/5.6 | 26.0mm | ISO-1250 | 2017:10:17 16:52:29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



필자는 이 아름다운 마애 불상과 여러 석조물이 좋고, 

바위벽 양쪽에 새겨진 불상들 사이에서 참배하는 기분도 좋고, 


덤으로 이곳까지 오르면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어 건강도 좋아지며 이곳에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 암석에서 나오는 생명수 같은 약수가 좋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찾는 곳입니다. 


금정산에는 이곳 말고도 암벽 사이에 근사하게 자리 잡은 고당봉 아래 미륵사도 있고 동편 저 아래 범어사도 있지만 금정산 북쪽 기슭의 만덕터널 위 역사 깊은 만덕 사지를 지나서 8부 능선까지 오르면 석벽에 자리 잡은 석불사는 수많은 석불 때문에 점점 유명해 지고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오는지는 모르지만 석불사까지 발품 팔아 올라오는 것을 종종 봅니다. 
사찰아래 갈림길에는 영어로 된 이정표가 있는것을 보면 많은 외국인이 불편해 하는것을 감안했을것입니다.


거대한 자연석벽에 새겨 놓은 불상들은 여느 사찰에서 보지 못한 장관(壯觀)입니다. 

불사채들은 그리 웅장하거나 특별한 것은 없으며, 대웅전(大雄殿), 칠성각(七星閣) 등과 종무소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 너르지 않은 마당 끝의 종각 앞을 지나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 영각(獨 聖 ?靈閣)이 있는데 이곳에서 좌우 암벽의 마애불 사이로 내려다보는 경관은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을 찾게 해 줍니다.


필자는 이곳의 마애불 명칭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석벽의 좌우에 사천왕(四天王)상이 있고 좌측 큰 암벽에 보살(菩薩-菩薩 乘菩薩乘)상 나한(羅漢-癩漢)상이 함께 새겨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을 방문 할 때 마다 조금씩 공부하기로 하며 ..


가장 중앙에는 자비의 상징인 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님의 큰 불상이 온화하게 내려다보며 그 앞에서 참배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사천왕(四天王)ILCA-77M2 | Pattern | 1/125sec | F/5.6 | 18.0mm | ISO-1250 | 2017:10:17 16:52:45사천왕(四天王)

사천왕(四天王)ILCA-77M2 | Pattern | 1/160sec | F/5.6 | 18.0mm | ISO-1250 | 2017:10:17 16:53:11사천왕(四天王)

석불사의 조각ILCA-77M2 | Pattern | 1/100sec | F/5.0 | 20.0mm | ISO-1250 | 2017:10:17 16:58:24석불사의 조각

석불사의 조각ILCA-77M2 | Pattern | 1/100sec | F/6.3 | 50.0mm | ISO-1250 | 2017:10:17 16:58:56석불사의 조각

석불사의 조각ILCA-77M2 | Pattern | 1/100sec | F/6.3 | 55.0mm | ISO-1250 | 2017:10:17 17:00:20석불사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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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傳) 중에서도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역사서이지만 불교적 내용이 재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삼국유사 제5권에 보면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이라는 3페이지 분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문을 사진으로 올립니다.

내용은 풀어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지만 결과론 적으로 말한다면 욱면이라는 여자 종이 염불정진해서 서방 불국정토로 산 몸으로 성불해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승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삼국유사(三國遺事)제 4,5권

삼국유사(三國遺事)제 5권ILCA-77M2 | Pattern | 1/40sec | F/5.6 | 22.0mm | ISO-800 | 2017:10:02 11:13:23삼국유사(三國遺事)제 5권


내용은 위와 같지만, 그 과정이 상당히 적나라하고 욱면이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염불 수행을 지극히 해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성불하고 극적인 승천을 하는 내용이 불교국가 신라에서 불자가 가져야 할 평등사상을 잘 이해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ILCA-77M2 | Pattern | 1/30sec | F/5.6 | 20.0mm | ISO-800 | 2017:10:02 11:14:10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제5권에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편을 보면 대략 저자 일연스님은 3페이지를 할애해서 쓴 것인데 내용을 풀어 보면 신라 경덕왕 때 강주(康州)에서 일만일 기도회를 조직하고 절을세워 기도하던중에 한 신자의 여자종이 어려운 고통중에서도 기도 정진하고 살아서 성불하여 여러사람이 보는 가운데 서방 불국정토로 승천한 내용이다. 

어떤 곳에 보면 강주를 한자 剛州라고 말하는데 내가 본 삼국유사 동래 범어사 본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康州(강주)로 쓰여있다.


康州(강주)는 지금의 진주이지만 만약 剛州라고 쓰였다면 지금의 순안인 것이다.


내용 풀이

남자 신자(종을 거느릴 정도의 부유한 사람들) 몇십 명이 서방정토를 정성껏 구하고자 주의 경계에 미타사를 세우고 1만 일 기도를 하는 계를 만든다.


주해:
강주(康州)는 신라시대의 행정 구역 구주(九州)중의 하나인데 지금의 진주(晉州)로 본다.

통일신라때에는 거열주(居列州)라고했으며 문무왕 3년 663때이다,
청주(菁州)로 불릴때는 신문왕 5년 685때이다.
강주(康州)로 불릴때는 경덕왕 16년때이다.
이후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부터 진주(晋州)라고 불린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까지는 강주(康州)라고 하다가 조선때 행정구역 12목으로 나누면서  진주목(晉州牧)이 되었다가 이후 1895년에 진주부(府) 진주면으로 된다.


그 때 계원중의 한사람인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여자 종이 있었고 그 이름이 욱면이다.
욱면은 주인이 기도하러 갈때마다 함께 따라가서 마당에 서서 승려들 염불을 따라서 염불을 했다.


주인은 종 주제에 염불하러 꼬박 꼬박 오는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염불하러 오려거든 매일
곡식 두 섬을 다 찧고 염불하라고 한다.


욱면은 불만없이 초저녁에 벌써 다 찧어 놓고 절에 가서 열심이 염불한다.
우리의 속담에 "내 일이 바빠서 큰집 방아 서두른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 속담의 유래가 바로 욱면이 매일 방아찧는다고 빈정대는 사람들에게 한 말인것이다.

욱면은 절 마당에 말뚝을 세워서 두 손바닥을 뚫어 새끼줄로 꿰어 달아매고 합장해서 좌우로 흔들어 자기를 추스리고 염불에 정진했다.


개인생각:
모르긴 해도 욱면의 주인이 나무기둥에 욱면을 매달아서 고통으로 벌 준 것을 좋게 쓴 것인지도 모른다.
욱면은 손바닥을 둟어 묶인째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뒤에 이 주인도 절을 짖고 좋은 불자가 되었기 때문에 좋게 기술한 것으로 생각해 본다. 


기간은 기도한지 약 9년쯤이라고 하는데 하늘에서 "욱면랑(郁面娘)은 당(堂)안으로 들어와서 염불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당시 함께 염불하던 절의 승려들이 듣고 욱면을 당에 들게해서 정진하게 했다.

구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쪽 하늘로 부터 음악소리가 들려오더니 욱면의 몸이 솟구쳐 올라서 집 대들보를 뚫고 나가 서쪽으로 교외(郊外)로 가다가 부처가 되어 연화대(蓮化臺)에 앉아 빛을 발하며 음악소리를 남기고 떠난것이다.


"그 법당(堂)에는 지금도 구멍이 뚫어진 곳이 있다고 한다." 까지만. ..신발 덜어진곳 등..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ILCA-77M2 | Pattern | 1/30sec | F/5.6 | 22.0mm | ISO-800 | 2017:10:02 11:14:48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ILCA-77M2 | Pattern | 1/25sec | F/5.6 | 22.0mm | ISO-800 | 2017:10:02 11:15:01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삼국유사(三國遺事) 제5권에 있는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을 찾아 본 내용입니다.

좋은 불자가 죽어서 성불하거나 극락왕생 불국정토로 가는경우는 많지만 살아서 육신과 함께 성불하는 극적인 경우는 드뭅니다.

불교국가 신라에서는 몇번 기록으로 나타나는데 욱면낭자의 부처가 된 경우가 가장 드라마틱한 기록입니다.  

여기의 사진은 복사 복제를 불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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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5세기 전후반해서 현재의 기장 청강리 부근에 발달한 자연마을에서 출토된 유물입니다.
청강리 대라리 덧널무덤에서 발굴된 새모양 토기인데 아무리 봐도 충경적이고 해학적인 모양입니다.

1500년도 더된 시대의 사람들을 미개인이라고 무시했다면 잘못된 생각일수도 있다고 느껴집니다.

현대 어느 미술전시회에 출품해도 금상정도는 먹을것같은 특이한 구성에 전혀 색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새모양 토기인것은 인정하지만 이게 무었을 하는 물건이냐고 묻는다면 모른다입니다.

미술품일까요? 술잔일까요? 향로일까요? 무당이 신을 부르는 도구일까요?


이 토기 모조품은 여러번 봤지만 오리지널을 기장 박물관에서 보고 담아온 것입니다.
오리지널이 아닐수도 있습니다.ㅎㅎ

본 고장 이라고 해서 꼭 진품을 진열하는것은 아니지요. 어떤것은 서울 중앙 박물관에 가져다 놓는 경우를 보기 때문에...

 


새모양 토기ILCA-77M2 | Pattern | 1/10sec | F/5.6 | 50.0mm | ISO-400 | 2017:08:12 10:46:14새모양 토기




2015/05/24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역사/고전] - 아름다운 분청사기(粉靑沙器)

2014/09/29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 - 가산리 마애여래입상-架山里磨崖如來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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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사자상이라고 붙혔지만 이 석상이 사자상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동물로서는 사자와 비슷하기 대문에 사자상이라고 할 뿐입니다.


석상은 추상적인 동물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기때문에 이 석상이 나타내는 동물이 정확히 무슨 동물인지는 모른다는 말입니다.


해인사를 들렸다가 나오면서 칠불보관(七佛寶官)이라는 전각엘 들렸는데 석탑좌우에 배치된 석상을 담아온것입니다.
워낙 빠듯한 시간으로 삼사순례를 하는 과정이라서 자세한 설명을 찾아 볼 시간이 없었고 그냥 카메라에 담기만해도 바빳던 날입니다.


집에와서 보니까 상당히 근사하게 느껴져서 블로그에 올리는 것입니다.


사자상ILCA-77M2 | Pattern | 1/500sec | F/9.0 | 28.0mm | ISO-200 | 2017:07:19 10:23:43사자상

탑과 석상ILCA-77M2 | Pattern | 1/640sec | F/9.0 | 26.0mm | ISO-200 | 2017:07:19 10:23:57탑과 석상

탑과 석상ILCA-77M2 | Pattern | 1/250sec | F/9.0 | 55.0mm | ISO-200 | 2017:07:19 10:24:10탑과 석상

칠불보관ILCA-77M2 | Pattern | 1/320sec | F/8.0 | 22.0mm | ISO-200 | 2017:07:19 10:24:30칠불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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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통도사 입구에 보면 얼마나 오래된 나무인진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고사목 등걸이 커다란 구조물처럼 서있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예술작품처럼 서있었는데 최근에 그 크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네요.

세월의 풍화에 고사목의 마지막 뼈대까지도 점점 사라져가는것이 아쉬웠는데,


올해부터 고사목 등걸아래에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천년 고사목 등걸이 부활(復活).하는것일까요.

뿌리부분에서 새로운 탄생이 제법크게 자라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썩어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기전에 새로운 탄생인지 부활인지 모르지만 싱싱하게 자라나는 어린 느티나무가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불교의 윤회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것은 사찰의 입구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마도 이곳을 자주 찾아오는 마음과 교통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것인가 봅니다.


고사목의 부활ILCA-77M2 | Pattern | 1/125sec | F/5.6 | 18.0mm | ISO-200 | 2017:07:26 17:13:21고사목의 부활





고사목의 부활(復活).ILCA-77M2 | Pattern | 1/125sec | F/5.6 | 18.0mm | ISO-200 | 2017:07:26 17:13:10고사목의 부활(復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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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가 볼때 마다 느낌이 다르고 거대한 가람 경내의 구성과 전각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경내 암자들도 하나같이 독특한 특징을 가진 큰 가람이다.


통도사 큰가람 마당에 심오하게 배치되어 있는 전각들을 다 살펴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각 전각들의 배치나 특징등으로 볼때 여느 사찰과는 확연히 구분되고 뛰어난 예술적인, 또는 최고의 건축미를 가진 대 가람이다.
그래서 국지대찰이란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통도사에있는 전각중에서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두개의 전각을 소개한다.
세존비각과 개산조당이다.
거의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두 전각의 경중에 깊은 뜻이 없을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세존비각 世尊 碑刻

비각은 원래 비석을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간결하게 세운 건물인데 어쩐지 불교적 느낌보단 우리네 풍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여느 비각처럼 비석 주위에 사각형으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대부분의 모양과 다르지 않지만 주위에 닜는 전각들과 잘 매칭되는 예술적 모양을 가지고 있다.


세존비각이라고 현판이 되 있다는것은 세존에 대한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는 말이다 .


그래서 이 비각이 관심이 가지만 아직 비문의 내용은 모른다.

석가세존의 비가 있다는것이 많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기회가 될때 세존비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 볼 것이다.


세존비각 世尊 碑刻ILCA-77M2 | Pattern | 1/125sec | F/5.6 | 18.0mm | ISO-200 | 2017:07:26 17:03:17세존비각 世尊 碑刻



개산조당(開山祖堂)

세존비각 조금 오른쪽으로 보면 개산조당이 있는데 용화전 옆 서쪽이다.
말할것도 없이 통도사를 창건한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사당으로 이해 하는데 정확히는 이분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으로 들어가는 정문을 말한다.


開山祖堂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문인데 해장보각의 조사문으로서 해장보궁(海藏寶宮)으로 통하는 문의 3칸 건물인데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구조로서 중앙의 칸이 양 측면 칸보다 약간 높게 솟아있어서 "솟을삼문"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현판이 없는 양쪽 문도 두 쪽의 널문이며 여닫을 수 있도록 되있고 건물형식은 조선말기 형식이라고 하며 일반적인 사당(祠堂)에서 볼 수 있는 솟을삼문과 흡사한것으로 본다.



영조 3년(1727)에 창건되엇다고 하는데 몇차례 중수되었는데 현재건물은 고종 4년(1867)에 많이 개축된것이라고 한다.

개산조당(開山祖堂)ILCA-77M2 | Pattern | 1/100sec | F/5.0 | 18.0mm | ISO-200 | 2017:07:26 17:02:20개산조당(開山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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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암은 통도사 본찰뒤편으로 북쪽 작은 산허리를 넘어서면 너른 벌판이 나오며 이곳 가운데로 작은 다리를 건너 영축산을 바라보고 노송림을 들어서 경사로를 오릅니다.


솔밭길 차도를 한참 지나가면 송림속에 극락암이 나오는데 극락암에서 더욱 영축산자락 가까이 북쪽으로 약 600m정도 더 들어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은 백운암가는길이고 우측은 비로암 가는길입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고 경사로를 오르면 깊은 산속 계곡에서 영축산을 바로 코앞으로 바라보는 지점에 노송으로 둘어쳐진곳에 빼어난 경관으로 비로암이 나타난다.


고려 충목왕 원년 1345년에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창건한것으로 알려지고있는 고찰이다.

이후 선조11년 1578년 태흠대사가 창건한곳으로 알려지고있으며 최근에 원명화상이 중수한 사찰로서 통도사 산문내 부속아자이다.


이곳에 소장된 중요 문화재로 1899년과 1904년에 조성된 아미타구품탱,산신탱,조왕탱등이 경남 유형문화재 제354호로 지전되어 있다. 

 

이곳에는 특별히 북두칠성 신앙을 반영한 북극전이 있으며 이곳에 있던 칠성탱은 현재 성보박물관에 이관되어있다.
칠성탱은 경남유형문화재 3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별자리거 표시되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여시문(如是門)과 3층석탑이 있다.

특히 이곳에서 약500m떨어진 곳에 통도8경으로 꼽히는 비로폭포와 함께 빼어난 암자와 배경으로 영축산이 병풍처럼 서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이곳은 철따라 바뀌는 영축산이 갈아입는 채색옷과 함께 항상 멋있는 전경을 자랑한다.
또 영축산 정상으로 오르는 빠른 등산로의 초입으로 가을이면 등산인들도 많이 찿고있다.

한여름 등산 하면서 들린 비로암의 사진 몇장을 아래에 보여 드립니다.


비로암 풍경ILCA-77M2 | Pattern | 1/125sec | F/5.6 | 18.0mm | ISO-160 | 2017:07:08 07:50:31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ILCA-77M2 | Pattern | 1/100sec | F/5.0 | 18.0mm | ISO-160 | 2017:07:08 07:48:42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ILCA-77M2 | Pattern | 1/100sec | F/5.0 | 18.0mm | ISO-160 | 2017:07:08 07:48:53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ILCA-77M2 | Pattern | 1/100sec | F/5.0 | 18.0mm | ISO-160 | 2017:07:08 07:49:10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ILCA-77M2 | Pattern | 1/200sec | F/7.1 | 18.0mm | ISO-160 | 2017:07:08 07:49:20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ILCA-77M2 | Pattern | 1/160sec | F/6.3 | 18.0mm | ISO-160 | 2017:07:08 07:49:38비로암 풍경

비로암 풍경ILCA-77M2 | Pattern | 1/100sec | F/5.0 | 18.0mm | ISO-160 | 2017:07:08 07:49:43비로암 풍경

비로암 전경ILCA-77M2 | Pattern | 1/125sec | F/5.6 | 18.0mm | ISO-160 | 2017:07:08 07:50:37비로암 전경

비로암 전경ILCA-77M2 | Pattern | 1/100sec | F/5.0 | 18.0mm | ISO-160 | 2017:07:08 07:55:19비로암 전경

비로암과 영축산ILCA-77M2 | Pattern | 1/100sec | F/7.1 | 35.0mm | ISO-160 | 2017:07:08 08:01:41비로암과 영축산






비로암ILCA-77M2 | Pattern | 1/125sec | F/5.6 | 18.0mm | ISO-160 | 2017:07:08 08:03:38비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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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붕사 탐방기


창녕 유채꽃 봄나들이를 마치고 약간의 시간이 남아서 일붕사 탐방을 했다.

절벽 아래 그리 크지 않은 요사채들이 별로 깊지 않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석굴 대웅전이 있다는데 관심이 간다.


일단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관음전을 들렸다가 다시 석굴대웅전으로 내려왔다.

신선한 느낌이 들고 청아한 분위기가 드는 관음전이 여느 사찰에서 느낄 수 없는 좀 다른 기분이 드는 안온한 곳이었다.


동굴 대웅전을 들어가서 천정을 본 소감은 대단하단 느낌이 든다.

완전 암벽을 뚫어서 만든 너른 공간 저 안쪽에 3불이 모셔져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절터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잠깐이면 충분했으며 입구에 정성 들여 쌓은 석탑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기암절벽이 무슨 형상처럼 느끼는데 병풍처럼 서 있다.

그중에서 유달리 툭 튀어나온 석벽 하나가 마치 코끼리 형상으로 다가온다.

코끼리는 불가에서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코끼리 형상은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늦은 오후에 들린 작지만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드는 사찰 일붕사 탐방을 빨리 끝내야 하는 것은 오늘 유채 축제에서 본 수많은 차들을 생각 할 때 남해고속도로가 심상치 않을 것 같은 우려 때문에 서둘러 나왔다.
아시아 최대의 동굴법다인 대웅전이 색다른것 때문에 이곳을 알게 되었으며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오늘 짬이나서 다행이다.


봉황산 자락 석벽아래 자리잡은 일붕사는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청정로 1180-42 에 위치한 사찰이며 봉황산의 산기(山氣)가 너무 강해서 산아래 굴을 뚫어야 했다고 전해진다.


 일붕사 동굴법당과 바위절벽ILCA-77M2 | Pattern | 1/200sec | F/7.1 | 18.0mm | ISO-200 | 2017:04:16 17:52:30일붕사 동굴법당과 바위절벽

 일붕사 동굴법당과 바위절벽ILCA-77M2 | Pattern | 1/250sec | F/8.0 | 18.0mm | ISO-200 | 2017:04:16 17:51:35일붕사 동굴법당과 바위절벽

 일붕사 코끼리 바위 ILCA-77M2 | Pattern | 1/100sec | F/6.3 | 26.0mm | ISO-200 | 2017:04:16 17:55:35일붕사 코끼리 바위

일붕사 석탑ILCA-77M2 | Pattern | 1/125sec | F/6.3 | 26.0mm | ISO-200 | 2017:04:16 17:54:22일붕사 석탑

일붕사 ILCA-77M2 | Pattern | 1/20sec | F/14.0 | 30.0mm | ISO-200 | 2017:04:16 17:42:49일붕사

일붕사  동굴법당ILCA-77M2 | Pattern | 1sec | F/14.0 | 28.0mm | ISO-200 | 2017:04:16 17:46:13일붕사 동굴법당

일붕사  동굴법당ILCA-77M2 | Pattern | 1/80sec | F/14.0 | 28.0mm | ISO-200 | 2017:04:16 17:34:24일붕사 동굴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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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천주사는 신라 진평왕 때에 창건된사찰이라고 합니다.
일제때 소실되어 정확한 기록이 없다는것이 아쉬운 고찰입니다.

천주산은 대승사와 윤필암과 나옹스님의 출가지인 묘적암도 있습니다.
미륵 세계를 현세에 이루고자 했던 진평왕(眞平王)의 염원이 깃든 사찰로 전해지고 있네요.
사찰을 방문하기 위해 대충 알아본 개요입니다.

현재는 주지 중홍스님이 1985년 관음보살의 현시(現示)를 받고 현재의 터를 잡아 천주사를 재건하며 지금에 르고 있습니다.
1997년에 삼성각을 재 신축하였으며,
2004년에 대웅전을 건립.

현재진행중인 역동적인 불사들로 볼때 번창하리라는 느낌이드는 도량입니다.
대찰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고 안온한 느낌이들어 불자라면 머물고 싶어지는 절이군요..

천주사에 발원하는 문장 한줄을 소개하면, 
이름은 모양과 둘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하늘을 받치고, 하늘을 열어 준다.’ 라고 하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분명 천주산 천주사는 중생의 막힌 삶의 모든 부분을 부처님의 지혜와 관음보살의 대자비로서 밝고 훤하게 열어 줄 것입니다.
라는 글을 http://www.chunjusa.org/temple/info/info_02.html에서 보게 됩니다. 

아래는 천주산 천주사를 방문하며 담은 사진들입니다.
천주사 아래에 천주산 무료 주차장이 있습니다.


천주사 탐방ILCA-77M2 | Pattern | 1/800sec | F/9.0 | 30.0mm | ISO-640 | 2017:04:07 09:29:39천주사 탐방
주차장에서 조금아래 천주사 들입풍경입니다.
천주산 가는 길이기도 하구요..

천주사 탐방ILCA-77M2 | Pattern | 1/800sec | F/8.0 | 20.0mm | ISO-640 | 2017:04:07 09:43:23천주사 탐방

천주사 탐방ILCA-77M2 | Pattern | 1/200sec | F/7.1 | 18.0mm | ISO-100 | 2017:04:07 09:44:53천주사 탐방

천주산 천주사ILCA-77M2 | Pattern | 1/200sec | F/7.1 | 18.0mm | ISO-100 | 2017:04:07 09:46:11천주산 천주사

천주산 천주사ILCA-77M2 | Pattern | 1/200sec | F/7.1 | 18.0mm | ISO-100 | 2017:04:07 13:51:02천주산 천주사

천주사 탐방ILCA-77M2 | Pattern | 1/200sec | F/7.1 | 18.0mm | ISO-100 | 2017:04:07 13:52:10천주산 천주사

천주사 탐방ILCA-77M2 | Pattern | 1/250sec | F/8.0 | 18.0mm | ISO-100 | 2017:04:07 13:50:42천주산 천주사

천주사 탐방ILCA-77M2 | Pattern | 1/125sec | F/8.0 | 50.0mm | ISO-100 | 2017:04:07 13:55:18천주산 천주사

천주산 천주사ILCA-77M2 | Pattern | 1/160sec | F/8.0 | 28.0mm | ISO-100 | 2017:04:07 13:54:23천주산 천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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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문수사 탐방


문수산을 오르면서 문수사를 참배하고 점심 공양도 문수사에서 하며 산행을 했습니다.
산행이라기 보다 문사사 참배하러 갔다가 점심먹고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문수산 정상까지 다녀 온 것입니다.


처음가는길이라서 멋모르고 갔는데 자동차 두대를 비낄수가 없어서 어디까지 백 해가며 급경사를 올라갔습니다.

문수사에서 정상까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울산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는 괜찮습니다.
해발 600m로 그리 높은산은 아니지만 급경사가 있는 만만하게 보면 안되는 산이군요.


문수사는 그리 큰 사찰은 아니지만 문수산 8부능선쯤 되는 좁은 터 벼랑끝에 앉은 절이네요.

 

문수산과 문수사ILCA-77M2 | Pattern | 1/100sec | F/11.0 | 28.0mm | ISO-50 | 2017:03:11 12:26:09문수산과 문수사

문수산과 문수사ILCA-77M2 | Pattern | 1/60sec | F/11.0 | 18.0mm | ISO-50 | 2017:03:11 12:29:22문수산과 문수사

문수산ILCA-77M2 | Pattern | 1/125sec | F/11.0 | 18.0mm | ISO-50 | 2017:03:11 12:28:01문수산

문수산과 문수사ILCA-77M2 | Pattern | 1/30sec | F/11.0 | 26.0mm | ISO-50 | 2017:03:11 12:41:23문수산과 문수사

문수산과 문수사ILCA-77M2 | Pattern | 1/25sec | F/11.0 | 18.0mm | ISO-50 | 2017:03:11 12:44:31문수산과 문수사

문수산과 문수사ILCA-77M2 | Pattern | 1/50sec | F/11.0 | 18.0mm | ISO-50 | 2017:03:11 12:45:32문수산과 문수사

문수산 문수사  가는길ILCA-77M2 | Pattern | 1/30sec | F/11.0 | 30.0mm | ISO-50 | 2017:03:11 12:47:07문수산 문수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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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연휴 해질옄에 찾아간 산사의 방에서 아름다운 노송들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지는 햇빛에 노송들의 자태가 창문을 통해 그림처럼 펼쳐진고즈넉한 느낌을 줍니다.


맞은편의 영축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있고 그 넘어로 태양이 사라지기 직전에 이곳 산사는 태양이 보내주는 에너지가 마구쏟아지는 장소입니다.

산사의 창으로 보는 풍경ILCA-77M2 | Pattern | 1/60sec | F/4.0 | 18.0mm | ISO-200 | 2017:01:30 16:15:26산사의 창으로 보는 풍경



그 옛날 자장께서 서향입지로 대찰을 세울 기도를 올리던 이곳에는 아직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는곳입니다.이곳에 오면 애써 자장스님의 향기를 느끼려 하지 않드라도 도처에 남아있는 이야기들과 소리없이 말해주는 바위들을 보노라면 지나간 그 긴 세월들을 유추해 보고도 남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이곳에서 자장스님이 몸을 부딪히고 만졌을 자장바위를 옆에두고 내가 무었을 염원하면서 하는것인지도 모르는 절을 생각없이 몇자리 올립니다.


그냥 요사채를 한바퀴 쭉 돌고 영축산을 바라보며 걸어 내려오는것 만으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사에서 보는 풍경ILCA-77M2 | Pattern | 1/160sec | F/9.0 | 35.0mm | ISO-200 | 2017:01:30 16:15:54산사에서 보는 풍경



본찰에는 올해도 붉은 자장매가 이미 피었고 사람들은 엄동에 피어있는 붉은 매화를 보려고 모여 있습니다.
남도의 봄은 통도사의 이 자장매로 부터 시작되고 한반도 전역을 향해서 봄꽃로드맵이 그려지기 시작 해서 조금씩 북상 한답니다.

 

통도사 홍매화-자장매ILCA-77M2 | Pattern | 1/200sec | F/9.0 | 26.0mm | ISO-200 | 2017:01:30 15:26:22통도사 홍매화-자장매


#자장매 #통도사홍매화 #남도첫매화 #봄의전령 #산사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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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 당일치기로 갔다 온것은 교통이 좋다지만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사진몇장은 찍어 왔으니까 시간 내어 발품팔고온 보람은 있다.

서울지역의 황사인지 스모그인지 정체불명의 운무가 하늘에 깔려서 사진이 쨍 하진 않지만 내겐 소중하다.

과천쪽에서 올라간 산행이 그리 만만치는 안았지만 경치는 볼만 하다. 


연주대를 바라보며 오래전 고려 主君에 대한 연민으로 고려충신들이 머물었고,
임금도 마다 하고 관악 연주대를 올랐던 양영대군도 떠 올려 본다.


冠岳은 五方으로 火山이고 火峰이 모여 이룬산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한양 도읍을 이룰때에 궁궐을 中方으로 오행풍수 이론으로 보면 南火 北水로 색갈은 火赤 이다.


남쪽 면에는 나한당(羅漢堂)을 두려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래서 지금도 연주대가 나한기도처로 유명한 장소이다.

무학이 불교적으로 생각했는지 五行사상에 의한 화기를 제앞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산(赤山)관악(冠岳)에 연주대(戀主臺)를 정비했다.

그전부터 이 장소에 화기를 눌러야 한양 도읍부터 이땅이 평안하다는 것은 인지했고 사찰을 세운다.
모르긴 해도 애국가 남산위에 저소나무가 관악산 적송을 말 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관악(冠岳)이라고들 하지만 연주대(戀主臺) 연주봉(戀主峯:629m)은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 속한다.이 사적 또한 경기기념물제 20호이다.


사진을 보면서 자료를 찾아 본 결과 산 전체로 봐서는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경기도 안양시,시흥시 에 연해있다.


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


   

연주대(戀主臺)는 관악산 연주암 북쪽 꼭대기 절벽에 위치한 경기도 기념물이다.
신라 문무왕 17년(667년)에 의상대사가 좌선공부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태조 원년(1392년)에 중건하였다.
고려의 남은 신하 강득룡, 서견, 남을진 등이 여기서 개성을 바라보고 통탄했다 해서 연주대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전망대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전망대


관악(冠岳)천문대관악(冠岳)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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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는 부산의 좋은 사찰 중의 하나로서 대 내외에 잘 알려진 곳입니다.
오늘 이곳을 탐방하며 찍은 몇점의 사진과 함께 탐방기를 남깁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부산에 오면 들리는 코스에 포함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나는 참배를 목적으로 다녀 왔읍니다.


인연과 과업인연과 과업을 느끼게 하는 글귀를 봅니다.

인연과 업보를 일깨워주는 글귀를 되 새기게 합니다.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를 탐방하며 입구부터 많이 변모된 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찾아 오는 사람이 많아 지는것 만큼 입구의 여러가지 상점들이 몰라보게 많아 진 것을 볼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으며 이곳 바닷가의 특산물 같은 것들이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산과 용국사를 알릴수 있고 멀리서 어렵게 찾아온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는 어떤 아이템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용궁사를 탓할 일은 아니며 평일은 좀 한산 하겠지만 휴일날 찾은 나는 입구의 주차장 진입 하는데도 붐비는 차량과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나 가면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배하려고 오는 불자와 관광하려고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별하는지는 모르지만 주차비3000원을 주고 복잡한 가운데 겨우 추차를 할수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왔을때 입구의 하얀 색갈이 나던 구름 다리나 석등들이 조금 때가 묻어서 색갈이 어두워져서 고찰의 면모가 보이기 시작해서 좋았습니다.

입구에 16나한상이나 동전던지는 시설 석물들이 새로이 생긴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일요일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서로 교행하기가 불편 할 정도입니다.입구 계단이나 다리가 이제는 좁아서 불편 할 정도가 됬군요.


인파를 보면 얼핏 보기에도 관광객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교와 비교적 친화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찰이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바다가 발 아래 있고 경치가 뛰어난 바위 언덕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관광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정도로 수려한 자태입니다.

이곳의 절경 때문에 사진만 찍으려고 오는 사진매니어 들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 입니다.


현재는 부산시 기장군에 속해 있는 절이지만 창건연대를 따져보면 고려시대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 혜근이스님이 1376년 창건하였으며 당시 사찰이름은 보문사 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640년전 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불타고 재건되고 한 역사는 거듭되었지요.
중창 역사를 보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후 통도사 운강(雲崗)스님이 중창했으며 1974년 정암스님이 관음도량으로 복원하면서 사찰명을 해동용궁사로 변경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는 42년전부터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관음성지(觀音聖地)의 하나로 많은 불자들로 부터 신앙성지로 참배하는 곳이 되었으며 오늘도 사람들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있습니다.


좋은 사진들을 담을 수 있는 곳이며 이곳의 하이라이트 관음석불(관음대불)은 카메라 렌즈로 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담지 않았습니다.


용궁사전경용궁사전경

입구에 보는 용궁사전경

바위언덕의 돌탑들바위언덕의 돌탑들

용궁사의 명물 돌탑 


참 좋은 곳에 오셨습니다.일주문과 비슷한 입구에 써 놓은 "참 좋은 곳에 오셨습니다."

참 좋은 곳에 오셨습니다.


용궁사전경용궁사에서 바닷가를 내려다 보는 전경

용궁사에서 바닷가를 내려다 보는 전경


용궁사 전경용궁사에서 바닷가를 내려다 보는 전경



용궁사용궁사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도 좋다거늘바다도 좋다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곳에 뫼단말가 하물며 청풍명월 있으니 여기곳 선경인가 하노라. 춘원 - 이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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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청룡동 은행나무

釜山靑龍洞銀杏樹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번지 범어사 경내에 있는 보호수입니다.

수령은 약 580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은행나무는 동래범어사의 설법전앞 성보박물관 뒤쪽 부근 주차장에 있습니다.
1980년 12월 8일 부산시 보호수로 지정되었고 지정번호는 2-11-16-0-1호입니다.
현재 나무 높이는 25m정도이며 나무 둘레는 6.6m입니다.
범어사 경내에 있기 때문에 범어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보호수 입니다. 


공식적인 이름은  부산 청룡동 은행나무 (釜山靑龍洞銀杏) 입니다.


#보호수, #은행나무, #청룡동,#범어사은행나무



보호수 부산 청룡동 은행나무ILCA-77M2 | Pattern | 1/200sec | F/6.3 | 40.0mm | ISO-100 | 2015:11:22 03:05:27부산 청룡동 은행나무 (釜山靑龍洞銀杏)이며 580년된 은행나무 보호수 입니다

범어사 은행나무가 올해도 고운 단풍을 보여 줍니다.
이 은행나무는 이 땅에서 벌어진 많은것들을 보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은행나무는 수명이 얼마나 되는진 모르지만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면서 이땅의 더많은 역사와 함께 유구히 살아 남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보호수 부산 청룡동 은행나무ILCA-77M2 | Pattern | 1/250sec | F/8.0 | 18.0mm | ISO-100 | 2015:11:22 03:06:03보호수 범어사 은행나무

보호수 부산 청룡동 범어사 은행나무ILCA-77M2 | Pattern | 1/320sec | F/8.0 | 100.0mm | ISO-100 | 2015:11:22 03:06:13보호수 범어사 은행나무

보호수 범어사 은행나무ILCA-77M2 | Pattern | 1/200sec | F/7.1 | 22.0mm | ISO-100 | 2015:11:22 03:06:23보호수 범어사 은행나무

보호수 범어사 은행나무ILCA-77M2 | Pattern | 1/250sec | F/8.0 | 30.0mm | ISO-100 | 2015:11:22 03:07:38보호수 범어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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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土器)의 정의


토기(土器)는 점토로 그릇모양을 만들어 말린후 불에 구운것을 말 하는데,
이때 온도가 섭씨 700~800도 정도에서 구운 그릇들을 말합니다.
기술적인 수준이 낮은 시대인 신석기 시대에 유약이란 개념이 없을 때 그냥 강도를 높일 목적으로 가열한 것으로서 표면색이 주로 적갈색을 띕니다.


대개 흙으로 만든것을 불에 구우면 섭씨 200도 정도에서 수분이 없어지고 600도에서 결정이 없어 진다고 한다.

700도에서 800도 정도로 구우면 흙속에서 탄소가 고온에서 산화되고 탄산염이나 유산염이 분해되어서 그냥 말린것 보다 강도가 월등히 강해진다. 

고대인들이 사용한 그릇중에서 표면이 거칠고 적갈색으로 매끄럽지 않게 생긴 초기 그릇이며 우리나라 신석기 유물이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


사진은 복천박물관에서 찍은 것입니다.

신석기시대 토기신석기시대 토기

토기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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