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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19 경주 남산(494) 탐방기.
  2. 2017.01.03 서울의 남방산 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


올 들어 가장 봄같은 느낌을 받는 일요일 삼능골을 기점으로 금오봉 찍고 용장골로 내려온 산행기입니다.
용장골 하산후 시내버스로 삼릉주차장까지 원점회귀했습니다(아래 지도참조).


등산이긴 하지만 사실 불교 유물들을 답사하는 목적으로 제대로 된 몇점의 사진을 얻기위해서 하는 등산입니다.
금오봉 아래 용장사 불탑으로 남겨진 하늘에 솟은 석탑과 원형 탑신위에서 목없이 가슴으로 바라보는 불상을 찍으려는 목적이 더 큰 산행이었습니다.

산행 지도는 아래에 트랭글로 체크한대로 카피해서 올립니다.
GPS가 한참후에 연결되어서 주차장에서 삼릉과 산행 검색대까지는 체크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산인들은 올해의 산행을 유서깊은 이곳 남산에서 시작하나봅니다.  
입구에는 자리판을 넓게 펴고 시산제를 올리는 단체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도포를 입고 유건까지 갖춰입고 경건하게 읍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삼능을 보고 천천이 오르는데 3월의 세째 일요일 경주 남산 오르는 길은 마치 시골 장날 장꾼들 같이 많은사람들이 오릅니다.
무리지어 산행하는 사람들을 산꾼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한무리 두무리 산악회원들이 가끔 똑같은 색갈의 등산복까지 맞춰입고 지나갑니다.

중요 유적앞에는 역사 해설사가 한무리씩 모아놓고 설명하고 듣는 모습이 마치 학생들이 야외 수업을 하는것처럼 보입니다.


잘 들으셨습니까 ? 라는 해설사의 물음이 있습니다.

산계곡이 울릴정도로  "예 " 하고 대답하는 큰 소리를 내는것을 보면 여느 학생들 보다 훨씬 진지합니다.


오르면서 상선암 옆 용장골 대불은 그 위의 바위들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는 위험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고있습니다.
가는길도 폐쇄되어 아예 어딘지도 신경쓰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있습니다.
그래도 바라 볼 수있는 곳은 많기때문에 아주 섭섭하진 않습니다.

경주 남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100대명산에 드는 좋은산입니다.

진행하고있는 명산100탐방단으로서 인증샷도 담고 중식을 한 후 하산하면서 금오봉 아래 천하명당 용장사지에서 한참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설잠(雪岑 1435~1493)의 금오신화를 떠 올려보며 낙낙 절벽 바위끝에 앉아서 사색하는 호사도 누립니다.
용장사지삼층석탑을 보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하늘에 걸린 이 아름다운 삼층석탑은 신라불교가 왕성하던 1000년도 더 이전에 세워진 놀라운 작품입니다.

바로아래 용장사지에 좀더 가까운곳엔 언제 왜 누가 불상의 목을 훼손 했는지는 모르지만 머리없는 불상이 가슴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는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는 마음을 더 아리게 합니다.

세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으로 말 한다면 역사적인 내용으로 생육신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불자로 말 한다면 설잠스님이라는 호칭이 마땅합니다.
호: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산을 내려 오면서 설잠교(雪岑橋)를 만납니다.

경주시에서 이 계곡 용잠골에 대한 의미로 그옛날엔 없었을게 분명한 다리 하나를 설치했는데 설잠교라고 이름 붙였군요.
사실 그리 높지도 크지도않은 이 남산(494m) 용장골은 상상밖으로 물이 좋습니다.
이작은 산 계곡이 이처럼 좋은 물이 흐르는것은 이상할 정도입니다.
 
설잠스님이 남긴 의미있는 작품이나 글귀들은 많지만 웃어야 할지모르는 한 글귀가 생각납니다.
아마도 세상을 보는 그분의 마음 한구석이 아닌가해서요..
후세인들이 글귀나 사안을 보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논하는것은 아니며 그냥 역사를 공부한다는 자세로 옮겨봅니다. 


한명회의 시

        靑春扶社稷  청춘부사직  --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

        白首臥江湖   백수와강호  --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


김시습의 시

       靑春亡社稷  청춘망사직  --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白首汚江湖  백수오강호 --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간단한 이 시문 하나로 봐도 당시 권력구조가 바뀌고 생육신이된 아직 젊은 나이의 매월당 김시습의 마음
한 구석을 보는듯 합니다.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ILCA-77M2 | 18.0mm | ISO-400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삼층석탑.
대한민국의 보물 제186호


ILCA-77M2 | 18.0mm | ISO-400



경주남산용장사곡석조여래상(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남북국 시대 신라의 삼층석탑.
대한민국의 보물 제187호

이 불상은 용장사터에 있는 미륵장육상으로 추정.
삼륜대좌 위에 모셔진 특이한 구조인데 목이 훼손되어 복원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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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산행정보.

이동거리:6.02 km  소요시간:05:29:05  이동시간:03:39:05 등산소요칼로리:536 kcal 

평균속도:1.40 km⁄h 최고속도:10.90 km⁄h 최저속도:0.00 km⁄h 최고고도:488.00 m 최저고도:63.00 m

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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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 당일치기로 갔다 온것은 교통이 좋다지만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사진몇장은 찍어 왔으니까 시간 내어 발품팔고온 보람은 있다.

서울지역의 황사인지 스모그인지 정체불명의 운무가 하늘에 깔려서 사진이 쨍 하진 않지만 내겐 소중하다.

과천쪽에서 올라간 산행이 그리 만만치는 안았지만 경치는 볼만 하다. 


연주대를 바라보며 오래전 고려 主君에 대한 연민으로 고려충신들이 머물었고,
임금도 마다 하고 관악 연주대를 올랐던 양영대군도 떠 올려 본다.


冠岳은 五方으로 火山이고 火峰이 모여 이룬산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한양 도읍을 이룰때에 궁궐을 中方으로 오행풍수 이론으로 보면 南火 北水로 색갈은 火赤 이다.


남쪽 면에는 나한당(羅漢堂)을 두려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래서 지금도 연주대가 나한기도처로 유명한 장소이다.

무학이 불교적으로 생각했는지 五行사상에 의한 화기를 제앞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산(赤山)관악(冠岳)에 연주대(戀主臺)를 정비했다.

그전부터 이 장소에 화기를 눌러야 한양 도읍부터 이땅이 평안하다는 것은 인지했고 사찰을 세운다.
모르긴 해도 애국가 남산위에 저소나무가 관악산 적송을 말 하는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관악(冠岳)이라고들 하지만 연주대(戀主臺) 연주봉(戀主峯:629m)은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 속한다.이 사적 또한 경기기념물제 20호이다.


사진을 보면서 자료를 찾아 본 결과 산 전체로 봐서는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경기도 안양시,시흥시 에 연해있다.


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


   

연주대(戀主臺)는 관악산 연주암 북쪽 꼭대기 절벽에 위치한 경기도 기념물이다.
신라 문무왕 17년(667년)에 의상대사가 좌선공부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태조 원년(1392년)에 중건하였다.
고려의 남은 신하 강득룡, 서견, 남을진 등이 여기서 개성을 바라보고 통탄했다 해서 연주대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전망대관악(冠岳) 연주대(戀主臺)전망대


관악(冠岳)천문대관악(冠岳)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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