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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26 가야 왕(王)들의 저택?사이를 걸으며.

창녕 교동 고분군을 걷는다. 


이곳을 바라만보고 지나치다가 오늘 시간이 되어 이 거대한 무덤사이를 차분한 마음으로 걷는다. 


이 땅에서 사라져간 굵직굵직한 지배자들의 흔적 중에서도 창녕지역의 비화가야(飛花伽倻)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곳 교동 고분군은 이미 일본 강점기에 발굴되고 거의 모든 유물은 일본으로 빼돌려져 바다 건너로 사라지고 없다. 이 거대한 고분들은 속 빈 강정같은 느낌을받는다. 


그래도 고분들 사이를 걸어가며 아득한 옛날 5세기 전후의 어느 맑은 날 비사벌 국의 위엄있는 한 왕이 환두대도를 차고 신하들과 함께 어버이의 묘소를 방문했던 어느 날을 상상하며 내가 거기에 있었을 것 같은 착각을 하며 봉분 사이를 걷는 호사를 누린다. 


이미 일본은 소위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설정하고 짜깁기로 역사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썼지만 비화가야(飛花伽倻)기의 유물들이 원래 일본 땅이라는 어떠한 증거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고령에서도 똑같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구 발굴해서 이 땅에서 수많은 왕의 무덤을 훼손하고 부장품들을 도둑질해갔다. 


한반도에 일본이 지배했고 그들의 지배 부가 있었다고 우기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추종하는 일본인들의 허무맹랑한 집염으로 무덤들 파고 회손했지만 진실은 그들에게 굴욕만 안겨준 현장이다. 


도굴로 인해서 고분의 속은 텅 빈 채로 비화가야는 시간 속에 잠들고 있는 역사로 남아있다. 

지금도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야유물 가운데 창녕이 출토지로 된 많은 유물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금동관, 금동제 관모(冠帽), 금은장식 환두대도(環頭大刀) 같은 왕들의 위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우리의 역사 유물들은 하루빨리 되돌려 받아야만 한다. 


이 땅에 존재했던 비화가야-비사벌국이라는 신라와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5세기 중반에 엄연히 존재했던 힘과 권세가 막강한 지배자가 통치했던 하나의 국가로서의 이곳 역사가 올바르게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18년 초봄 아득한 역사의 흔적이 엄연한 교동 고분군 탐방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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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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