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2.26 가야 왕(王)들의 저택?사이를 걸으며.
  2. 2014.09.24 대가야의 현장 고령 지산리 여행

창녕 교동 고분군을 걷는다. 


이곳을 바라만보고 지나치다가 오늘 시간이 되어 이 거대한 무덤사이를 차분한 마음으로 걷는다. 


이 땅에서 사라져간 굵직굵직한 지배자들의 흔적 중에서도 창녕지역의 비화가야(飛花伽倻)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곳 교동 고분군은 이미 일본 강점기에 발굴되고 거의 모든 유물은 일본으로 빼돌려져 바다 건너로 사라지고 없다. 이 거대한 고분들은 속 빈 강정같은 느낌을받는다. 


그래도 고분들 사이를 걸어가며 아득한 옛날 5세기 전후의 어느 맑은 날 비사벌 국의 위엄있는 한 왕이 환두대도를 차고 신하들과 함께 어버이의 묘소를 방문했던 어느 날을 상상하며 내가 거기에 있었을 것 같은 착각을 하며 봉분 사이를 걷는 호사를 누린다. 


이미 일본은 소위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설정하고 짜깁기로 역사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썼지만 비화가야(飛花伽倻)기의 유물들이 원래 일본 땅이라는 어떠한 증거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고령에서도 똑같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구 발굴해서 이 땅에서 수많은 왕의 무덤을 훼손하고 부장품들을 도둑질해갔다. 


한반도에 일본이 지배했고 그들의 지배 부가 있었다고 우기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추종하는 일본인들의 허무맹랑한 집염으로 무덤들 파고 회손했지만 진실은 그들에게 굴욕만 안겨준 현장이다. 


도굴로 인해서 고분의 속은 텅 빈 채로 비화가야는 시간 속에 잠들고 있는 역사로 남아있다. 

지금도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야유물 가운데 창녕이 출토지로 된 많은 유물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금동관, 금동제 관모(冠帽), 금은장식 환두대도(環頭大刀) 같은 왕들의 위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우리의 역사 유물들은 하루빨리 되돌려 받아야만 한다. 


이 땅에 존재했던 비화가야-비사벌국이라는 신라와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5세기 중반에 엄연히 존재했던 힘과 권세가 막강한 지배자가 통치했던 하나의 국가로서의 이곳 역사가 올바르게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18년 초봄 아득한 역사의 흔적이 엄연한 교동 고분군 탐방기를 마친다.

창녕고분군ILCA-77M2 | 45.0mm | ISO-250창녕고분군

교동고분군ILCA-77M2 | 100.0mm | ISO-250교동고분군

 비화가야(飛花伽倻) 고분군ILCA-77M2 | 18.0mm | ISO-250비화가야(飛花伽倻) 고분군

#창녕고분군 #교동고분군 #비화가야 #임나일본부설 #역사왜곡 #왕들의 저택 



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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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고령지산리 고분군과 대가야 성지


부산에서 맘먹고 일찍출발해서 지산리 박물관과 고분군을 둘러 보고 미나미지로의 웃을수도 없는 "임나대가야국성지"라는 비석이 있든곳을 둘러 봤다.
비석옆에는 고령향교가 청아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부근 경관도 좋다.


경관이라고 말 한다면 대부분의 고분들을 올라서서 내려다 보면 지금은 차도가 이리저리 달리고 발달된 도시가 어울어저 있지만 눈을감고 가만이 그 옛날 대가야시대를 상상해 보면 너른 벌판가운데 우뚝솟은 그들의 분묘는 장관이었을것이고 가장 근사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 이만한 경관도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생각을 해 보면서 스스로 행복해 지는 느낌때문에 역사여행을 좋아한다.


그 수많은 고분군들을 보면 도대체 대가야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했기에 이처럼 거대한 무덤을 이렇게 많이 조성했는가를 생각하면 정말로 미스테리라고 밖에 답이 안나온다.


현대인들의 우수한 토목기술과 불도저같은 장비로 밀어서 만든다고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돈과 시간과 인력이 필요 한 대 역사일 것 이라는 생각이다.


또 미나미 지로의 비석(새)을 보면서 이곳이 일본인들의 조상의 옛터이고 그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역사적으로 가공해서 진실로 엮어보려고 하면서 비석을 세워 흔적을 남기려한 발상이 아마도 그때는 진지했으리란 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금은 고령 주민들이 그 비석의 임나라는 글자와 세운이 남차랑이란 글자를 지워버리고 있던 비석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지금 비석은 대가야국성지라고 같은 크기로 새로 만들어 세운것이다.

그때 미나미지로는 형편없는 기술로 우리의 고분을 닥치는대로 훼손하며 고대유물을 도둑질해간 장본인이기도 하며 수많은 우리의 보물들을 일본으로 가저갔다.

나는 이런걸 볼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강력한 국력을 회복해서 그들이 침탈한 우리의 보물들을 스스로 조아리며
용서를 빌면서 가지고 올수 있도록 해야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하여튼 이장소는 유명하고 오래도록 역사적인 사실이 똑바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가야가 형성되는 초기역사는 확실한 기록이 부족해서 김해의 금관가야와 맞물리고 얽히면서 약간은 어지럽지만 이 또한 어수선한 역사적인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우리의 역사가 올바르게 정립되어 우리의 우손들이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를 놓고 헷갈리지 않아야 할것이다.


고령박물관IM-A860K | 1.1mm | ISO-0고령박물관 전경


고령지산리 고분군과 대가야 성지고령지산리 고분군과 대가야 성지


고령지산리 고분군과 대가야 성지IM-A860K | 1.1mm | ISO-0고령지산리 고분군과 대가야 성지



대가야국성지 비석고령지산리 고분군과 대가야국성지 비석


고령향교고령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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