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떠나는 계절 경주 대능원에서 단풍을 봅니다.


대릉원(大陵園)의 가을이 아름답습니다. 
가을이 떠나고 단풍이 다 사라지는계절에 경주 관광을 합니다.


대능원을 한바퀴 돌아서 솔밭을 지나며 대능과 어울어진 멋진 단풍을 감상합니다.
대부분 단풍이 다 떨어지고 없지만 마지막으로 피는 애기단풍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노랑, 빨강색깔로 예쁘게 빛납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 대능원의 주인공들이 역사속 어느지점에서 예쁜 단풍을 보고 튀어나와 나무 아래를 걸어 가는 상상을 해 봅니다.
신라의 어느 낭도가 긴머리를 널으뜨린 처자와 함께 단풍나무 아래를 걷는 아름다운 모습도 그려봅니다.

고적지를 돌아보는 여행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내가 역사속 어느 지점으로 빨려들어가 보는 재미때문에 
여운이 좋아서 여행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저기 솔밭 길에서 한 무리의 낭도들이 떠들며 즐겁게 걸어 옵니다.
다들 내게 공손하게 인사를 합니다.
몇몇에게 눈을 맞추고 덕담을 건네 줍니다.
그리고 아는 젊은이에게 춘부장의 안부를 묻습니다. 

에제 대능원을 지나서 안압지 동궁과 월지로 갈 것입니다.

  

경주관광 대능원경주관광 대능원

대능원의 가을대능원의 가을

대능원의 단풍길대능원의 단풍길

대능원의 단풍대능원의 단풍

대능원의 단풍대능원의 단풍

대능원대능원

대능원의 가을대능원의 가을

대능원의 가을대능원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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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통도사를 찾았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통도사 계곡에는 마침 개산제와 단풍나들이가 겹쳐서 많은 인파가 붐비고 시끌벅적 기분좋은 휴일분위기였습니다.


통도사의 가을SONY | ILCA-77M2통도사의 가을

이제 막 물드는 싱그런 단풍이 깨끗한 계곡물과 함께 멋집니다.
단풍이 물드는 숲에서는 숲속 음악회가 열리고 사람들은 자연속에서 음악에 취합니다.


금강계단에는 참배하는 불자들이 줄을 잇고 요사채들 앞에는 가을 국화로 예쁘게 꾸민 화환들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경내 이곳저곳에는 전에 없던 불상과 조각 작품들도 많이 놓여있습니다.

금강계단엔 너무오래 기다릴것 같아서 관음전에 들리고 나와서 자장암 서운암을 들렀다가 내려왔습니다.

계곡에는 도토리 줍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제 태풍에 올 가을 도토리가 전부 떨어졌나봅니다.       

처음으로 구입한 셀카봉으로 멋진 인증샷도 찍었는데 셀카 놀이가 상당히 재미있군요..
이렇게 편리 할  줄 알았다면 진작 샐카봉을 하나 장만 할걸 그랬습니다.


때로는 셀카로 때로는 DSLR로 통도사 계곡 사진스케치를 기분좋게 했습니다.
아마 제대로 물든 통도사 단풍은 다음달 초쯤이 될것같습니다.
단풍이 한창일때 맞춰서 단풍나들이는 다시한번 더 와야겠습니다.


통도사 계곡의 가을SONY | ILCA-77M2통도사 계곡의 가을

통도사 계곡의 가을SONY | ILCA-77M2통도사 계곡의 가을

통도사 계곡의 단풍입니다.
막 물들기 시작하는데 이제부터 다음달 중순까지 계속 예쁠것 같습니다.


통도사 숲속 음악회SONY | ILCA-77M2통도사 숲속 음악회

숲속음악회가 인기가 많은가봅니다.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통도사 숲속 음악회SONY | ILCA-77M2통도사 숲속 음악회


통도사계곡의 가을SONY | ILCA-77M2통도사계곡의 가을

통도사의 가을SONY | ILCA-77M2통도사의 가을

조용한 사찰 경내보다 오늘처럼 붐비고 꾸며진 
경내의 가을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통도사의 가을SONY | ILCA-77M2통도사의 가을

통도사 개산제SONY | ILCA-77M2통도사 개산제



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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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천궁으로 가는 선운산(禪雲山)선운사(禪雲寺) 탐방기


선운사(禪雲寺)는 선운산(禪雲山)아래의 백제시대에 창건된 대한민국 명승고찰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기도 합니다.
행정구역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입니다.


선운사 입구를 보면 선운산 도립공원 구역과 겹치면서 대형 주차장 시설과 함께 좌측으로 작은 특산품 상점과 먹거리 상점들이 늘어서있고 길따라 조형물들 사이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 져있었습니다.


장관을 이룬다는 선운사 꽃무릇은 아직 꽃대도 올라온게 없지만 경네에는 붉은색갈 배롱나무(백일홍)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경내의 요사채들은 상당히 큰 계곡과 개울이 흐르는 옆의 평지에 잘 정돈되어 구성되어있으며 계곡따라서 계속 뛰어난 산책로는 이어집니다.


선운사의 연혁을 살펴보면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있습니다.


고려 충숙왕 5년 1318년 효정선사-중수 - 공민왕 3년(1354)-재중수 - 조선 성종 5년(1474) 행조선사 중창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후 정유재란 때 소실- 광해군 6년(1614) 무장태수 송석조가 원준대사를 통해 1619년까지 5년간에 걸쳐 재건했습니다.

조선 정조 18년 1794년에 임우상이 기술한 선운사 사적기 내용.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이곳에 와서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기록.

불자였던 진흥왕이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진흥굴 윗산에 중애암을 짖고  만월대 아래에 도솔암을 세웠다고 합니다.


잠간 연혁을 살펴보고 경내를 돌아 보면 그리 크고 웅장하다고는 생각 되지 않지만 요사채들이 적당한 간격과 편한 기분이 드는 배치로 짧은시간에 돌아 볼 수있는 평지에 구성되있습니다.


등산 블로그 http://fmt100.tistory.com/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선운사 일주문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일주문

가을이 막 시작되는 구월초 선운사 입구에서 보는 일주문과 파란 하늘이 예쁩니다.

선운사 입구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입구

선운사 입구 산책로에는 예쁜 조형물들이 있었습니다.   

선운사입구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입구


좀 고상하게 생긴 아치가 몇개있는데 오락게임에 나오는 마성으로 가는 문 같기도 한데 이 안으로 들어서면 왼지 좀 달라 질것같은 느낌이 들긴합니다.

어쩌면 도솔천궁으로 가는 도솔문일지도 모릅니다.ㅎㅎ.

그래서 사진 한장 찍었고요.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는 찍사가 되어준 후 나도 인증사진 한장 부탁해서 남았네요.


선운사 천왕문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천왕문

선운사 천왕문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천왕문

선운사 석등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석등

선운사 대웅보전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대웅보전

선운사 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선운사 석탑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석탑

선운사 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선운사 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선운산 도립공원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산 도립공원

 

한참을 오르면 유명한 선운사 템플스테이도 있습니다.


서운사 템플스테이OLYMPUS CORPORATION | TG-5서운사 템플스테이



시간이 정지 한 듯한 고요한 이 계곡에서 철따라 펼쳐질 예쁜 그림들이 충분히 연상됩니다.

이 또한 사찰의 경내라고 생각되며 모르긴 해도 오래전에는 수많은 암자들이 계곡따라서 선운산 골짜기마다 있었다고 하는 기록을 실제로 느낄 수가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서 도솔천궁으로 가는 길이 꼬불꼬불 천년 수림속으로 이어져있습니다.


선운사 계곡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계곡

선운사 계곡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계곡


가끔 사진으로 경치가 바로 여기었습니다.

아늑한 계곡의 잔잔한 봇물과 징검다리와 건넛편 숲길과 정자가 서정적이고
기막힌 경치를 연출 합니다.
단풍이 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추측을 해 봅니다.

선운사 계곡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계곡



가람 배치의 전경입니다.

선운사 전경OLYMPUS CORPORATION | TG-5선운사 전경



선운사를 품은 선운산 수리봉을 먼저 등산한 후 하산해서 참배도하고 경내를 둘러 보며 담은 몇장의 사진과 함께 남기는 탐방기입니다.



선운사 문화유적 목록 (출처:위키백과) 

보물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高敞 禪雲寺 金銅地藏菩薩坐像) : 보물 제279호

고창 선운사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高敞 禪雲寺 兜率庵 金銅地藏菩薩坐像)) : 보물 제280호

고창 선운사 대웅전(高敞 禪雲寺 大雄殿) : 보물 제290호

고창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高敞 禪雲寺 懺堂庵 大雄殿) : 보물 제803호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高敞 禪雲寺 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 : 보물 제1200호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高敞 禪雲寺 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 : 보물 제1752호


천연기념물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高敞 禪雲寺 동백나무 숲) : 천연기념물 제184호

고창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高敞 禪雲寺 兜率庵 長沙松) : 천연기념물 제354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선운사석씨원류(禪雲寺 釋氏源流) :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4호

선운사영산전목조삼존불상(禪雲寺靈山殿木造三尊佛像) :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호

선운사육층석탑(禪雲寺六層石塔) :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

선운사범종(禪雲寺梵鐘) :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1호

선운사약사여래불상(禪雲寺藥師如來佛像) :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3호

선운사만세루(禪雲寺萬歲樓) :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53호

선운사백파율사비(禪雲寺 白坡律師碑) :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22호

선운사사적기(禪雲寺 事蹟記) :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55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고창 선운사 도솔암 나한전(高敞 禪雲寺 兜率庵 羅漢殿)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선운사도솔암내원궁(禪雲寺兜率庵內院宮)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행사
선운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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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도량 나반존자(那畔尊者) 사리암(邪離庵) 가던날.


오늘 일요일 경북 청도 운문사 사리암(邪離庵)을 다녀왔습니다.

운문사를 지나서 아름답고 운치있는 솔밭길을 걸어서 계곡깊고 산세험한 호거산 중턱에 자리잡은 영험도량 사리암(邪離庵)에서 나반존자(那畔尊者)께 잠시 마음을 비우고 업드렸습니다.


삿된 마음을 이곳에서 분리하여 떨치자고하지만 끈질긴 집념이 마음속에 있어 이곳에서 잠시나마 사리(邪離)하려 애를 써 봅니다.

 

삿된것을 떨쳐 버리자는 뜻인 사리암(邪離庵)은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신 사찰입니다.
나반존자(那畔尊者)는 500나한,18나한 또는 16나한 중에서 가장 첫번째로 불리는 최고의 깨우침을 얻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라한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입니다.


빈두로는 이름이고 성은 파라타인데 한문권에서 빈두로존자( 賓頭慮 )라고 쓰며 빈도라발라타사(貧度羅) 즉  Pindola bharadvaja입니다.


부처님 열반 하신 후 중생을 제도하는 책무를 가진 16 또는 18나한 중에서 제 1 존자입니다.


세존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 있는데 부처님 열반 후 중생을 제도하고 있으며 주세(住世) 아라한이라 부릅니다.
지금도 어느 사찰 어느곳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존자를 부른다면 금방 나타나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는것입니다.

나반존자(那畔尊者)또는 빈두로존자( 賓頭慮 )를 모시는 곳은 불자가 불국정토로 귀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바세계에서 고통으로 인한 염원을 가장 잘 들어 주는 아라한을 모시고있으며 오늘도 구름같이 찾아와서 경사진 이곳을 오르는 불자들의 행열은 꼭 효험에 대한 입소문때문 만은 아닐것입니다.


나반존자(那畔尊者)는 열반도 미루고 불타 이후 끊임없이 중생을 구제하고있습니다.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이 이곳에서 기도하면 빠르게 구제 받을 수 있다는것은 이분 아라한의 존재 의무와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고통받고 서러운 중생을 제도하는 빈도로존자는 하얀 머리카락과 길고 하얀 눈섭을 가진 형상으로 보여지고있습니다.

팔공산 갓바위와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운문사 사리암(邪離庵)은 중생들의 절실한 소원을 빨리 들어주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소위 기도빨이 잘 받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지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불자라면 지금 무었이 가장 고통스럽습니까?

고통스런 문제 때문에 방황하는 중생은 나반존자(那畔尊者)께 오늘 마음을 내려놓고 빌어 보신다면 곳 삿되고 가식적인 굴례를 벗어나서 피안으로 가는 해답을 체험 할지도 모릅니다.^^


좀 일찍 공양간에 들려서 아름다운 동행을 하시는 분들이 준비한 귀한 공양 받고 왔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하시는 분들이 항상 건강해서 이곳을 올라올때 펄펄 날듯 하시고 식구들이 크게 늘어나시길 염원합니다.


#빈두로존자 #나반존자 #사리암 #존자 (尊者)  


존자는 불교에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부처님의 제자를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운문사 솔밭길SONY | ILCA-77M2운문사 솔밭길

사리암 가는 솔밭길은 정말 운치가있습니다.
운문사에서 사리암 주차장 까지의 약 2K의 기막힌 산책로는 사리암을 가지 않드라도 유명한 힐링 코스입니다.

천태각SONY | ILCA-77M2천태각

나반존자(那畔尊者)가 모셔진 사리암 천태각입니다.
이곳을 바라보는 곳에 너른 요사채가 마련되어 기도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방석포 건조대SONY | ILCA-77M2방석포 건조대


기도하는 분들의 방석포입니다.
좋은 볕에 깨끗이 말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개운해 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SONY | ILCA-77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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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ulco.tistory.com BlogIcon 지성의 전당 2018.11.25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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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羅漢)은 아나한 즉 아라한(阿羅漢)을 말 하는데 그냥 "아"자를 빼고 줄여서 "라한" 즉 나한(羅漢)이라고 합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르하트 즉 Arhat 입니다.

사찰에 따라서 나한(羅漢)을 따로 모시는 나한전(羅漢殿)이 있는곳도있습니다.

나한(羅漢)은 불자가 수행해서 부처가되는 최고의 이상상(理想像)을 말 하는것입니다.

많게는 500 나한을 모시는 곳도있습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라고 표현 하는 성인 중에서 불자가 도달하는 최고의 이상상을 말 하는것입니다.


아라한 자체는 원래 부처를 가리키는 명칭이었습니다.
후세에 내려오면서 세존과 구별되는 칭호로서 불자들이 수행해서 도달하는 최고의 위치(상)로 바뀌어 칭하게 된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라한(阿羅漢)은 불자가 성불한 자체라고 볼 수있습니다.


단번에 아라한(阿羅漢)이 되는것은 아니며 수행 결과에 따라서 범부(凡夫), 현인(賢人),성인(聖人)의 순서로 칭하며 성인 중에서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하면 아라한(阿羅漢)이라고 칭 합니다.

불자는 마땅히 노력하여 중생에게 함부로 물질적 부담을 주지않고 스스로 생활해야 하지만 아라한(阿羅漢)이 되면 세상의 존경을 받을 만한 하고 또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자(尊者)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응공(應供)이라고 쉽게 풀어서 칭 하기도 합니다.


아라한(阿羅漢)은 이미 번뇌를 끊고 생사윤회를 거듭하지 않는 해탈을 이루고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이므로 그 분들은 진리 그 자체로 볼 수있다하여 응진(應眞)이라고도 풀어 칭 하는것입니다.


중생의 눈으로 볼 때 나한(羅漢)은 6가지의 신통력과 8가지의 해탈에 이르는 법을 모두 갖추었고 번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부처가되어서 성자로서의 신앙적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라한의 능력을 말 하기는 곤란하지만 수행승 중 최고의 자리에 들어선 것이며 크게 3가지의 불교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

살적(殺賊) 번뇌의 적을 그복한것입니다.

무생(無生)의 경지로서 영원히 열반에 들어 생명을 받지 않습니다.

천상(天上)인으로 부터 공양을 받는 응공(應供)입니다.


많은 나한(羅漢)들은 석가께서 열반 하신 후 정법(正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지대한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열반에 들지 않고 수명을 무한적으로 연장해 가면서 속세에 머물고 있으며 장차 미륵불이 나타날 때 영접 할 것이며 그때까지 중생을 교화하고있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에서는 특정 나한(羅漢) 한 분을 모시는 영험 나한기도처가 있으며 그곳에는 나한(羅漢)께서 현신(現身)할 수 도 있고 특별하게 중생의 아픈곳을 헤아려 주는 곳으로 생각하는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불교적 사상으로는 대략 8세기 후반 말세 또는 새(新)세상이 도래하는 생각과 함께 나한에 대한 신앙이 크게 깊어진 것으로 알려지고있습니다.


나한(羅漢)은 16나한 또는 오백나한이 전부 신앙의 대상이며 큰 규모의 사찰에는 영산전(靈山殿)을 갖추고 석가모니불 좌를 중앙으로 좌우에 16나한 혹은 18나한이나 오백나한을 봉안합니다.


사찰에 따라서는 석가모니불과 나한 상(像)을 불화로 그려 모시는 곳도 있습니다.

이때 나한도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양편으로 각각 대칭적으로 배치된 것을 볼 수있습니다.


가끔 나한 상이 탱화로 존재 할 수도있는데 이 때는 각 한 분의 나한을 1폭에 그려서 거대한 16폭 나한 탱화가 될 수도있으며 두 분씩이나 네 분씩으로 표현 할 수있으며 정해진 규칙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당(唐)의 현장(玄)의 저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에서 16나한들의 명칭과 머무는 곳과 권속들의 정법수호가 설(說)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16나한(羅漢)의 이름은 빈도라발라타사, 가락가벌차, 가락가발리타사, 소빈타, 낙거라, 발타라, 가리가, 벌사라불다라, 수박가, 반탁가(半託迦), 나호라(羅), 나가서나, 인게타, 벌나파사, 아시다, 주다반탁가입니다.
그러나 16나한에 이름이 없지만 큰 
나한(羅漢)도 있습니다.
후세 독성(獨聖)하신 나한(羅漢)도 있기때문입니다.


아래 나한 마애 불상 사진에서 각기 형태에 따라서 이름을 대입 하기는 곤란합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이며 산스크리트어로는 arhat이며 팔리어로는 arahant입니다.


영어권에서는 해석해서 Perfected one이라고 하며 한 완벽한존재라고 해석 할수있겠습니다.

who has attained nirvana 또는 enlightened, worthy, venerable, saintly one 이라고 칭하는데...
깨닳은사람 성인등으로 우리의 표현과 다르진 않습니다.

아래 16나한 마애불상입니다.


8나한OLYMPUS CORPORATION | TG-58나한

8나한 마애불


8나한 16나한OLYMPUS CORPORATION | TG-58나한 16나한
8나한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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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

조계산 선암사 입구 
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여름 사진입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 입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아치교인 이 다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최근 이층 누각 보수가 끝나고 다리아래로 보이는 멋진 모습이 그림같이 예쁩니다.

1963년 9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이 승선교를 어제 조계산 등산하면서 아침에 담은것입니다.


다리의 제원을 찾아 보니까 길이 14m, 높이 4.7m, 폭 4m입니다.

조선 숙종 39년(1713년)호암화상이 6년게 걸쳐서 완공한 다리이군요.
기저부(基底部)에 별다른 가설이 없이 자연 암반위에 세운 홍예(虹預)로서 하단 초기부터 곡선이 시작되어 다리 전체가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는 하나의 아치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필자의 주석으로 이 다리는 사바세계의 고통에서 부처의 세상 피안의 나라로 건너가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다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SONY | ILCA-77M2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

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SONY | ILCA-77M2선암사승선교(仙岩寺 昇仙橋)

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SONY | ILCA-77M2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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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암 가는길에..


통도사 암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백운암은 해발750m의 고도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이다.

영축산을 등산하는 함박등을 거치는 등산코스에 자리잡은 곳이기도해서 산인들에겐 잘 알려진곳이며 쉼터이기도 합니다.


통도사에서 이 암자를 가려면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하지만 가는도중에 만나는 기막힌 심산의 자연을 보면 올라온것이 잘했다고 충분히 느낄수있습니다.


백운암 가는길에 담은 사진 몇장을 올립니다.

심산의 경계심 없는 다람쥐나 숲깊은 계곡의 물소리나 이름모를 울창한 수림과 누가 쌓은것인지도 모르는 돌탑들 , 그리고 나무에 매달려 나부끼는 수많은 명언들이 이 코스를 걷는사람들의 눈을 즐겁고 바쁘게 합니다.


백운암에서 이정표로는 700m정도에 함박등이 있다고 표시되어서 함박등까지 다녀왔다.

함박등거리를 별것아니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간월재에서 영축산으로 내려와 본 경험때문에 오늘은 함박등에서 쉬었다가 백운암으로  그냥 하산했습니다. 

백운암가는길은 통도사에서 출발한다면 극락암까지 완만한 평지이긴 하지만 거리상으로 30분이상 걸리는 거리입니다.극락암에서 백운암가지는 일반인으로 1시간40분정도 걸리는 거리로서 약 1.5~6Km되는것으로 짐작됩니다.

만약 자동차로 극락암지나서 백운암가는 길로 접어들어 적당한곳에 주차하고 오른다면 1시간이내로 오를수도있을것입니다.


백운암가는길백운암가는길


백운암 가는길에 만난 다람쥐SONY | DSLR-A300백운암 가는길에 만난 다람쥐


백운암 가는길에 SONY | DSLR-A300백운암 가는길에


백운암 가는길에 SONY | DSLR-A300백운암 가는길에


백운암에서 본 서운암 장경각 SONY | DSLR-A300백운암에서 본 서운암 장경각


백운암SONY | DSLR-A300백운암

백운암SONY | DSLR-A300백운암



2015/05/06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사찰/문화유적/] - 고찰(古刹)에서 담은 녹슬은 사진


2015/04/09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사찰/문화유적/] - 통도사의 봄


2015/02/15 - [블로그일기] - 통도사(通度寺) 홍매화(紅梅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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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古刹)을 다니면서 작은 부분을 살펴보면 정감넘치는 좋은 미술 소품이나 좋은 구조물의 일부가 참 많습니다.

석물이나 목각 구분없이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소박하지만 볼 수록 정감이 넘치고 해학적이기도한 미술품들은 많습니다.

꼭 미술품으로 만들진 않았겠지만 필요소품 그자체가 좋은 미술품일것입니다.
우리들의 옛 생활의 단면들이 고찰의 문틀에, 문고리에, 문종이에, 지붕에 그대로 남아있어 옛날 고향의 어린시절 보던 고가를 떠 올립니다.


보는대로 정감이 들어서 담은 사진입니다.


사찰(寺刹)미술SONY | DSLR-A300사찰(寺刹)미술

옛날문살SONY | DSLR-A300옛날문살

거북이자물쇠SONY | DSLR-A300거북이자물쇠

석각미술석각미술

옛날 경첩SONY | DSLR-A300옛날 경첩
옛날 경첩

옛날 문살SONY | DSLR-A300옛날 문살

목각 미술SONY | DSLR-A300목각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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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성불사를 참배하고 둘레길을 걸으면서 몇장 담은것입니다.

성불사는 장산 중턱의 해발고도가 높은곳이기때문에 기온도 아래보다 좀 낮아서 여름에는 숲속 피서지로 좋지요.

반여동쪽으로 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둘레길의 초입이라서 성불사를 가금 들리게됩니다.

멀리서 봐도 산중턱에 노랗게 보이는 황금색 대불도 가까이 볼수있습니다.
성불사입구의 수국과 산수국은 초여름 보기좋은 꽃이고요..


둘레길 조금 올라가면 전망대에서 보는 마린시티전경과 광안대교 초입은 멋집니다.
날씨가 좋아서 마린시티 요트들이 한꺼번에 나들이라도할때는 그림이 훨씬 좋지요..

 

산수국SONY | ILCA-77M2산수국

성불사 산수국SONY | ILCA-77M2성불사 산수국

수국SONY | ILCA-77M2수국

성불사SONY | ILCA-77M2성불사

광안대고 초입SONY | ILCA-77M2광안대고 초입

마린시티SONY | ILCA-77M2마린시티

성불사 대불SONY | ILCA-77M2성불사 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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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진산 팔공산을 오르면 동봉 바로아래 산허리에 거대하고 아름다은 석불을 보게됩니다.

동봉을 오르기 직전 동봉을 뒤로하고 세워진형태의 서향 석불로서 전체 높이는 무려 6m에 달하는 거대한 석불입상입니다.

자세히보면 얼굴이 5각형 형태로 두 볼이 풍만하게 표현되었으며 자세히보면 미소를 머금은것 같이 봅입니다.

남여를 구분한다면 여성으로 보이는 불상이며 좀 비대칭으로 보이는 부분은 오른팔이 크게 묘사되어있는데 이정도를 만드는 조각 장인이 실수로 오른팔을 이토록 크게 만들리는 없을것이며 불교적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손가락의 길이도 고르지 않아서 실제적인 사람으로 생각 할때 조금은 부자연스러울 수가 있지만 조각가가 대충 마무리를 어물쩡 넘긴 작품이라고는 보지 않으며 이 표현속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을것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왼팔은 무었인가를 들고 가슴 앞까지 올리고 있습니다.
약사여래상으로 볼 때 약병같은 종류로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발가락이 보이는 맨발이며 옷자락 밑으로 나와있으며 또렷하고 조화롭게 표현되어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아 통일 신라시대의 유작으로 추정한다고 보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진 않으며 감히 훨씬 이전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팔공산 중앙봉에 있는 이 불상의 명칭은 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입니다.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SONY | ILCA-77M2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SONY | ILCA-77M2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SONY | ILCA-77M2대구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大邱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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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교동 고분군을 걷는다. 


이곳을 바라만보고 지나치다가 오늘 시간이 되어 이 거대한 무덤사이를 차분한 마음으로 걷는다. 


이 땅에서 사라져간 굵직굵직한 지배자들의 흔적 중에서도 창녕지역의 비화가야(飛花伽倻)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곳 교동 고분군은 이미 일본 강점기에 발굴되고 거의 모든 유물은 일본으로 빼돌려져 바다 건너로 사라지고 없다. 이 거대한 고분들은 속 빈 강정같은 느낌을받는다. 


그래도 고분들 사이를 걸어가며 아득한 옛날 5세기 전후의 어느 맑은 날 비사벌 국의 위엄있는 한 왕이 환두대도를 차고 신하들과 함께 어버이의 묘소를 방문했던 어느 날을 상상하며 내가 거기에 있었을 것 같은 착각을 하며 봉분 사이를 걷는 호사를 누린다. 


이미 일본은 소위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설정하고 짜깁기로 역사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썼지만 비화가야(飛花伽倻)기의 유물들이 원래 일본 땅이라는 어떠한 증거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고령에서도 똑같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구 발굴해서 이 땅에서 수많은 왕의 무덤을 훼손하고 부장품들을 도둑질해갔다. 


한반도에 일본이 지배했고 그들의 지배 부가 있었다고 우기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을 추종하는 일본인들의 허무맹랑한 집염으로 무덤들 파고 회손했지만 진실은 그들에게 굴욕만 안겨준 현장이다. 


도굴로 인해서 고분의 속은 텅 빈 채로 비화가야는 시간 속에 잠들고 있는 역사로 남아있다. 

지금도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야유물 가운데 창녕이 출토지로 된 많은 유물이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금동관, 금동제 관모(冠帽), 금은장식 환두대도(環頭大刀) 같은 왕들의 위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우리의 역사 유물들은 하루빨리 되돌려 받아야만 한다. 


이 땅에 존재했던 비화가야-비사벌국이라는 신라와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5세기 중반에 엄연히 존재했던 힘과 권세가 막강한 지배자가 통치했던 하나의 국가로서의 이곳 역사가 올바르게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18년 초봄 아득한 역사의 흔적이 엄연한 교동 고분군 탐방기를 마친다.

창녕고분군SONY | ILCA-77M2창녕고분군

교동고분군SONY | ILCA-77M2교동고분군

 비화가야(飛花伽倻) 고분군SONY | ILCA-77M2비화가야(飛花伽倻) 고분군

#창녕고분군 #교동고분군 #비화가야 #임나일본부설 #역사왜곡 #왕들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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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 사는 만덕터널 위 금정산 계명봉 아래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벽 아래 자리 잡은 부산에서 석불이 가장 많은 사찰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본인이 한창나이일 때 휴일 놀러 가곤 했을 때 병 품 암이라고 불리던 곳임으로 대략 1980년대까지 병풍 사라고 하거나 병품암으로 불리던 사찰입니다. 


사실 웬만큼 발품 팔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절 마당까지 자동차가 들어갈 수가 있으며 일반인들이라도 만덕 터널에서 상당한 경사로를 자동차로 갈 수가 있어서 접근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명칭이 석불사로 변경되었고 사실 병풍사라는것을 아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자연암벽에 도드라지게 새긴 대단한 불상들은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역사(力事)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리 오래된 석물은 아니지만, 석물이 거대하면서도 정교하고 또 일반인이 봐도 그 예술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마애불상 들입니다. 


정확한 행정구역으로 본 주소는 부산광역시 북구 동래구 만덕1동 만덕고개길 143-79 석불사입니다. 


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SONY | ILCA-77M2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



필자는 이 아름다운 마애 불상과 여러 석조물이 좋고, 

바위벽 양쪽에 새겨진 불상들 사이에서 참배하는 기분도 좋고, 


덤으로 이곳까지 오르면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어 건강도 좋아지며 이곳에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 암석에서 나오는 생명수 같은 약수가 좋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찾는 곳입니다. 


금정산에는 이곳 말고도 암벽 사이에 근사하게 자리 잡은 고당봉 아래 미륵사도 있고 동편 저 아래 범어사도 있지만 금정산 북쪽 기슭의 만덕터널 위 역사 깊은 만덕 사지를 지나서 8부 능선까지 오르면 석벽에 자리 잡은 석불사는 수많은 석불 때문에 점점 유명해 지고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오는지는 모르지만 석불사까지 발품 팔아 올라오는 것을 종종 봅니다. 
사찰아래 갈림길에는 영어로 된 이정표가 있는것을 보면 많은 외국인이 불편해 하는것을 감안했을것입니다.


거대한 자연석벽에 새겨 놓은 불상들은 여느 사찰에서 보지 못한 장관(壯觀)입니다. 

불사채들은 그리 웅장하거나 특별한 것은 없으며, 대웅전(大雄殿), 칠성각(七星閣) 등과 종무소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 너르지 않은 마당 끝의 종각 앞을 지나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 영각(獨 聖 ?靈閣)이 있는데 이곳에서 좌우 암벽의 마애불 사이로 내려다보는 경관은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을 찾게 해 줍니다.


필자는 이곳의 마애불 명칭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석벽의 좌우에 사천왕(四天王)상이 있고 좌측 큰 암벽에 보살(菩薩-菩薩 乘菩薩乘)상 나한(羅漢-癩漢)상이 함께 새겨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을 방문 할 때 마다 조금씩 공부하기로 하며 ..


가장 중앙에는 자비의 상징인 십일면관음 보살(十一面觀音菩薩)님의 큰 불상이 온화하게 내려다보며 그 앞에서 참배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사천왕(四天王)SONY | ILCA-77M2사천왕(四天王)

사천왕(四天王)SONY | ILCA-77M2사천왕(四天王)

석불사의 조각SONY | ILCA-77M2석불사의 조각

석불사의 조각SONY | ILCA-77M2석불사의 조각

석불사의 조각SONY | ILCA-77M2석불사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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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傳) 중에서도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역사서이지만 불교적 내용이 재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삼국유사 제5권에 보면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이라는 3페이지 분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문을 사진으로 올립니다.

내용은 풀어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지만 결과론 적으로 말한다면 욱면이라는 여자 종이 염불정진해서 서방 불국정토로 산 몸으로 성불해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승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삼국유사(三國遺事)제 4,5권

삼국유사(三國遺事)제 5권SONY | ILCA-77M2삼국유사(三國遺事)제 5권


내용은 위와 같지만, 그 과정이 상당히 적나라하고 욱면이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염불 수행을 지극히 해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성불하고 극적인 승천을 하는 내용이 불교국가 신라에서 불자가 가져야 할 평등사상을 잘 이해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SONY | ILCA-77M2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제5권에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편을 보면 대략 저자 일연스님은 3페이지를 할애해서 쓴 것인데 내용을 풀어 보면 신라 경덕왕 때 강주(康州)에서 일만일 기도회를 조직하고 절을세워 기도하던중에 한 신자의 여자종이 어려운 고통중에서도 기도 정진하고 살아서 성불하여 여러사람이 보는 가운데 서방 불국정토로 승천한 내용이다. 

어떤 곳에 보면 강주를 한자 剛州라고 말하는데 내가 본 삼국유사 동래 범어사 본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康州(강주)로 쓰여있다.


康州(강주)는 지금의 진주이지만 만약 剛州라고 쓰였다면 지금의 순안인 것이다.


내용 풀이

남자 신자(종을 거느릴 정도의 부유한 사람들) 몇십 명이 서방정토를 정성껏 구하고자 주의 경계에 미타사를 세우고 1만 일 기도를 하는 계를 만든다.


주해:
강주(康州)는 신라시대의 행정 구역 구주(九州)중의 하나인데 지금의 진주(晉州)로 본다.

통일신라때에는 거열주(居列州)라고했으며 문무왕 3년 663때이다,
청주(菁州)로 불릴때는 신문왕 5년 685때이다.
강주(康州)로 불릴때는 경덕왕 16년때이다.
이후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부터 진주(晋州)라고 불린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까지는 강주(康州)라고 하다가 조선때 행정구역 12목으로 나누면서  진주목(晉州牧)이 되었다가 이후 1895년에 진주부(府) 진주면으로 된다.


그 때 계원중의 한사람인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여자 종이 있었고 그 이름이 욱면이다.
욱면은 주인이 기도하러 갈때마다 함께 따라가서 마당에 서서 승려들 염불을 따라서 염불을 했다.


주인은 종 주제에 염불하러 꼬박 꼬박 오는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염불하러 오려거든 매일
곡식 두 섬을 다 찧고 염불하라고 한다.


욱면은 불만없이 초저녁에 벌써 다 찧어 놓고 절에 가서 열심이 염불한다.
우리의 속담에 "내 일이 바빠서 큰집 방아 서두른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 속담의 유래가 바로 욱면이 매일 방아찧는다고 빈정대는 사람들에게 한 말인것이다.

욱면은 절 마당에 말뚝을 세워서 두 손바닥을 뚫어 새끼줄로 꿰어 달아매고 합장해서 좌우로 흔들어 자기를 추스리고 염불에 정진했다.


개인생각:
모르긴 해도 욱면의 주인이 나무기둥에 욱면을 매달아서 고통으로 벌 준 것을 좋게 쓴 것인지도 모른다.
욱면은 손바닥을 둟어 묶인째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뒤에 이 주인도 절을 짖고 좋은 불자가 되었기 때문에 좋게 기술한 것으로 생각해 본다. 


기간은 기도한지 약 9년쯤이라고 하는데 하늘에서 "욱면랑(郁面娘)은 당(堂)안으로 들어와서 염불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당시 함께 염불하던 절의 승려들이 듣고 욱면을 당에 들게해서 정진하게 했다.

구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쪽 하늘로 부터 음악소리가 들려오더니 욱면의 몸이 솟구쳐 올라서 집 대들보를 뚫고 나가 서쪽으로 교외(郊外)로 가다가 부처가 되어 연화대(蓮化臺)에 앉아 빛을 발하며 음악소리를 남기고 떠난것이다.


"그 법당(堂)에는 지금도 구멍이 뚫어진 곳이 있다고 한다." 까지만. ..신발 덜어진곳 등..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SONY | ILCA-77M2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SONY | ILCA-77M2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삼국유사(三國遺事) 제5권에 있는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을 찾아 본 내용입니다.

좋은 불자가 죽어서 성불하거나 극락왕생 불국정토로 가는경우는 많지만 살아서 육신과 함께 성불하는 극적인 경우는 드뭅니다.

불교국가 신라에서는 몇번 기록으로 나타나는데 욱면낭자의 부처가 된 경우가 가장 드라마틱한 기록입니다.  

여기의 사진은 복사 복제를 불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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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5세기 전후반해서 현재의 기장 청강리 부근에 발달한 자연마을에서 출토된 유물입니다.
청강리 대라리 덧널무덤에서 발굴된 새모양 토기인데 아무리 봐도 충경적이고 해학적인 모양입니다.

1500년도 더된 시대의 사람들을 미개인이라고 무시했다면 잘못된 생각일수도 있다고 느껴집니다.

현대 어느 미술전시회에 출품해도 금상정도는 먹을것같은 특이한 구성에 전혀 색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새모양 토기인것은 인정하지만 이게 무었을 하는 물건이냐고 묻는다면 모른다입니다.

미술품일까요? 술잔일까요? 향로일까요? 무당이 신을 부르는 도구일까요?


이 토기 모조품은 여러번 봤지만 오리지널을 기장 박물관에서 보고 담아온 것입니다.
오리지널이 아닐수도 있습니다.ㅎㅎ

본 고장 이라고 해서 꼭 진품을 진열하는것은 아니지요. 어떤것은 서울 중앙 박물관에 가져다 놓는 경우를 보기 때문에...

 


새모양 토기SONY | ILCA-77M2새모양 토기




2015/05/24 - [여행/유적/역사인문전반/역사/고전] - 아름다운 분청사기(粉靑沙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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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사자상이라고 붙혔지만 이 석상이 사자상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동물로서는 사자와 비슷하기 대문에 사자상이라고 할 뿐입니다.


석상은 추상적인 동물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기때문에 이 석상이 나타내는 동물이 정확히 무슨 동물인지는 모른다는 말입니다.


해인사를 들렸다가 나오면서 칠불보관(七佛寶官)이라는 전각엘 들렸는데 석탑좌우에 배치된 석상을 담아온것입니다.
워낙 빠듯한 시간으로 삼사순례를 하는 과정이라서 자세한 설명을 찾아 볼 시간이 없었고 그냥 카메라에 담기만해도 바빳던 날입니다.


집에와서 보니까 상당히 근사하게 느껴져서 블로그에 올리는 것입니다.


사자상SONY | ILCA-77M2사자상

탑과 석상SONY | ILCA-77M2탑과 석상

탑과 석상SONY | ILCA-77M2탑과 석상

칠불보관SONY | ILCA-77M2칠불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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