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충신(忠臣) 충장공(忠壯公)이 된 화산군(花山君)천만리(千萬里).

반응형

조선충신(忠臣)이 된 명(明)나라 장수 천만리(千萬里).

부산 자성대 기념비로 보는 근대사의 인물 조선 충신 화산군(花山君) 충장공(忠莊公) 천만리(千萬里). 

 

근세사의 귀화인물 천만리(千萬里)장군은 무신으로서 명(明) 나라에서 귀화한 후 대를 이어 조선조정에서 충신으로 살았으며 충장(忠莊)이라는 시호를 받고 전국 각지에 조정이 배향하는 인물로서 [두산백과 - 천만리],[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천만리], [인명사전 - 천만리]등에 등재 소개되고 있는 조선 충신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장군은 중국 허난 성의 영양(潁陽)이 본관이고 중국에서의 가계도는 시조 천암(千巖, 1350~?)이 서촉(西蜀) 종북산(終北山) 천고봉(千古峰) 만인암(萬仞巖) 밑에 살았으며 그래서 성이 천 씨로 된 정도로서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우리나라에서는 영양천 씨(潁陽千氏)의 중-시조십니다. 

명나라에서 무신으로 조선 전쟁에 참전한 후 귀화해서 조선 문신으로 여생을 살았으며 저서로 시 44수와 문 2편이 '사암천문집'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군은 명나라의 수위사 겸 총독장(守衛使兼總督將)으로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전공을 세우고 귀화하여 한국 영양 천 씨의 중시조가 되시었으며 

충장공(忠壯公)시호를 받은 조선조정의 충신(忠臣)입니다

.

*********
정유재란(丁酉再亂)은 1597년 8월 도요토미 정권의 일본군이 임진왜란의 정전 회담이 결렬됨에 따라서 재차 조선을 침공하여 약 1년여 동안인 1598년 연말까지 지속된 전쟁임.

*********

자성대
자성대


이하 장군의 대략(大略)과 유적을 알아봅니다.


숙종조에서는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대보단(大報壇)’을 설치하고 종향(從享)했습니다.
고성(固城)의 호암서원(虎巖書院-
호암사(虎巖祠)), 청도(淸道)의 황강서원(皇岡書院 - 황강사(皇岡祠)), 문경(聞慶)의 노양각(魯陽閣), 진양(晉陽)의 만점각(萬瞻閣), 안동(安東)의 동산서원(東山書院), 남원(南原)의 환봉사(環峰祠) 등 전국에서 배향합니다.

 

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부산진 지성이었던 자성대(子城臺) 누각옆에 장군의 기념비와 안내문이 있으며 쉽게 접근할 수 있어 후세에 기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묘지는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입니다.

 

천만리(千萬里) 장군의 대략(大略)

자: 원지(遠之), 호: 사암(思庵), 시호: 충장(忠壯).


천만리(千萬里)는 1543년出生 ~ 歿未詳

부(父) 천종악(千鐘嶽),
모(母) 병부시랑 전탁(錢鐸)의 여식(女息).

부인 : 영녕백(永寧佰) 허언(許彦)의 
여식(女息)..

장남 : 천상(千祥) ,  

차남 : 천희(千禧)

9세 때부터 외숙(外叔) 전륜(錢倫)으로부터 수학(受學)함.


* 1571년 무과 장원 급제.
* 1575년 총절사(總節使)로서 당시 침공하던 대몽전에서 몽골군을 격퇴함.

대몽전쟁의 공훈으로 내직(內職) 내위진무사(內衛鎭撫使)가 됨.

억울한 참소를 입어 양릉(陽陵)에 귀양살이함.

귀양8년후 복직되어 태청전수위사(太淸殿守衛使)와 총독오군사를 겸직함.

태청전수위사때 

1592년 조선의 왜란에 명나라에서 원병으로 참전하는데 명황제의 명으로 조병영양사(調兵領糧使) 겸 총독장(總督將)이 되어 조선-일본 전에 파병됨.

아들 천상(千祥), 천희(千禧)와 함께 3 부자가 당시 총대장 이여송(李如松) 휘하에서 군량 수송업무를 관장함.


장군은 

압록강(鴨綠江) 건너 곽산(郭山)에서 첫 전투를 치르는데 철기군(鐵騎軍) 2만 명으로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 휘하에서 대승을 거둠.

 

* 지체 없이 평양(平壤)으로 진군해서 주둔하던 왜병을 포위 공격함.

제3차 공성전에서 대포로 평양성 칠성문(七星門)을 폭파하고 승세(勝勢)를 몰아 적군 1,280여 급(級)을 제거하는 성과를 거둠.

 

연전 전승하며 한반도를 남하하여 지금의 부산인 당시 동래(東萊) 성까지 진군해서 왜적의 전의를 크게 상실하게 함.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마귀(麻貴)제독 휘하로 조선에 파병됨.

중사마(中司馬)직책으로 왜병과 직산(稷山)에서 조우하는데 매복 전술로 대승하는데 당시 적군이 잡초가 쓰러지듯 했다는 일방적 승리를 함.

이후 왜군은 울산(蔚山)까지 도망 치고 버티는데 계속 공격해서 완승을 거둠.

당시의 큰 공로를 인정한 기록으로 지금의 서생인 당시 서생진(西生鎭)의 바위절벽에 새겨놓음.

조선인 천만리(千萬里) 장군의 대략(大略)

왜란이 종전이 되고 1600년 선조 33년  8월에 참전 했던 명장 만세덕(萬世德)과 이승훈(李承勛)은 명나라 본국으로 귀국함.

이때 

천만리(千萬里) 장군은 두 아들과 함께 조선에 머물러 귀화합니다.
그는 한양에 머물며 조선 명산을 다니는데 그때 금강산(金剛山)을 세 번 탐방하고 두류산(頭流山)을  두 번 탐방했다고 합니다.
이때 머무는 곳에 시를 읊어 심정을 남깁니다.

시심(詩心)은 대체로 고국 명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땅의 고신(孤臣)을 표현함.

장군은 이미 당시의 명나라가 국운이 다 해 감을 알고 오랑캐로부터 짓밟히는 곳에 후손의 삶을 맛기지 않는 선견(先見)으로 당시 사상이나 철학이 비슷한 조선에 남고자 한 것입니다.

명나라는 장군의 예측대로 오래가지 못하고 망합니다.


당시 선조는 

천만리(千萬里)를

 자헌대부(資憲大夫)로 봉조하(奉朝賀)의 벼슬을 내려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하사금 전(田) 30결(結)을 함께 내려 신하로 삼습니다.
******
[비공식 추정] 1결의 현대 땅넓이:대충 3000평정도로 추정.
+++++
그의 장남 천상(千祥) 또한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으로 차남 천희(千禧)는 평구도찰방(平邱道察訪)으로 벼슬을 삼아 자손대대로 세록을 전수받게 하여 깊은 신하로 대우합니다.
******
당시 한성부에는 종2품 벼슬 정원 2인이 있었으며 부윤(府尹)에 는 좌윤과 우윤이 있었습니다.
현대 관직으로 볼 때 종 2품은 대법원 검사장,차관보,부시장,부지사,군인 중장 정도의 벼슬입니다.
******


숙종(肅宗)에 이르러 대보단(大報壇)을 설치해서 종향(從享)함.
1827년 순조(純祖)때는 신주(神主)를 부조(不祧)함.

1910년 7월 26일 순종은 종헌으로 높이 칭한다는 뜻으로 충장(忠莊)이라는 시호를 하사함.

이로서 

천만리(千萬里) 3 부자는 조선의 신하로서 조정의 충신으로 후세에 길이 남게 됩니다.

 

장군의 두 슬하는 각각 6남, 4남을 두시며 한국 영양 천 씨 10파를 이루었고 융성한 후손이 이 땅에 번성하게 되었으며 유구히 이어 갈 것입니다.

부산 자성대 공원에 조성된 천만리님의 행적을 보면서 공인으로 후세에 남긴 업적과 시대를 예측하고 과감한 결단력으로 미래를 성취하신 것을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우러러 마음에 새기는 자세로 포스팅합니다. 
혹시라도 어휘 선택에 무리가 있거나 표현에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땅 넓이 "결" 벼슬 "부윤"은 검증된 자료가 아닙니다.

충장공(忠壯公) 천만리(千萬里)
조선충신(忠臣) 충장공(忠壯公) 천만리(千萬里)

 

충장공(忠壯公) 천만리(千萬里)
충장공(忠壯公) 천만리(千萬里)

 

충장공(忠壯公) 천만리(千萬里)
충장공(忠壯公) 천만리(千萬里)

 

천만리(千萬里) 님 기념비
천만리(千萬里) 님 기념비




 

일반인의 지식으로 천만리 장군에 대한 이력을 공부하는 자세로 알아본 것이며 부족한 내용이 많을 것입니다. 잘못된 곳을 댓글이나 방명록으로 지적해 주신다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첨삭하겠습니다.

 

조선왕조 왕위계승도와 왕조의 계보흐름

 

조선왕조 왕위계승도와 왕조의 계보흐름

조선왕조 왕위계승도와 왕조의 계보흐름 왕조의 계보와 왕위계승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작성한 것입니다. http://dramatique.tistory.com/2142의 JJH님의 허락을 받아서 왕위계승선을 추가한 도

omnislog.com

동래예찬(東萊禮讚)과 산책기.

 

동래예찬(東萊禮讚)과 산책기.

우리 고장 동래에는 역사 유물이 많습니다. 동래에는 가야 고 분도 있고 장영실 작품도 전시합니다. 동래읍성(내성)은 살아있는 노천 박물관이지요. 가깝게는 전사이가 도난(戰死易假道難)이라

omnislog.com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와 정암진 전투(鼎巖津戰鬪)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와 정암진 전투(鼎巖津戰鬪)

정암진과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부산쪽에서 의령을 방문하면 입구에 정암진의 진문과 문루에 깃발이 휘날리고 문을 통과하면서 홍의장군의 동상이 멋지게 보인다. 정암진을 방문하고 홍의

omnislog.com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현대인이 살고 있는 옛날 마을 -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현대인이 살고 있는 옛날 마을 낙안읍성은 옛날마을 그대로 변형없이 잘 보존된 읍성으로서 현대인이 그 속에서 실제로 살고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성안에 발달한 마을은 전통적인

omnislog.com

 가락국(駕洛國) 황세바위의 슬픈 이야기

 

가락국(駕洛國)황세바위의 슬픈이야기

봉황대에서 만난 황세바위의 슬픈이야기 김해시의 역사유물이 조밀하게 남아있는 중앙부근에 있는 봉황대에서 황세바위를 본다. 황세바위 이야기는 슬픈 내용이지만 함께자란 소년들의 순수

omnislog.com

 

 동래부동헌(東萊府 東軒)

 

동래부동헌(東萊府 東軒)

동래부동헌(東萊府東軒)은 동래 내성안에 자리잡은 유서깊은 곳으로서 조선시대 관아이지만 현대까지도 관공서로 사용된 특별한 곳입니다. 인조14년 1636년에 동래부사 정양필이 창건한것이며 1

omnislog.com

 

 

구당(龜堂) 남휘(南暉)와 정선공주(貞善公主)의 분묘(墓).

 

구당(龜堂) 남휘(南暉)와 정선공주(貞善公主)의 분묘(墓).

구당(龜堂) 남휘(南暉)와 정선공주(貞善公主)의 묘(墓). 행정구역으로는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산1-2이며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얕으막한 산자락 양지바른곳에 분묘 3기가 있고 그아

omnislog.com

동래부사 유심(東萊府使 柳沈)과 전생(前生) 어머니

 

동래부사 유심(東萊府使 柳沈)과 전생(前生)어머니

전생 어머니를 만난 이야기의 주인공 동래부사 유심(東萊府使 柳沈)의 애틋한 이야기 전생 어머니를 만난 실존지역 동래성 내성지구는 지금의 칠산동이나 수안동 부근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배

omnislog.com

동궁과 월지(東宮과月池)-안압지(雁鴨池).

 

동궁과 월지(東宮과月池)-안압지(雁鴨池).

동궁과 월지(東宮과月池)-안압지(雁鴨池). 경주 역사관광-통일신라의 기막힌 정원 경주의 동궁과 월지는 674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직후 조성된 것이며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정원유적입니다

omnislog.com

 

반응형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