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아픈 역사 여행 일본군 포대 유적지

부산의 아픈 역사 여행 일본군 포대 유적지



부산 가덕도의 일본군 포대 유적지 외양포포대(外洋浦砲臺).

부산 가덕도에는 특별한 유적지 외양포포대(外洋浦砲臺)가있습니다.
거가대교를 타고 거제도로가는 도중에 가덕도로 빠져나와서 대항으로 가면 작은 언덕산을 넘어서 외양포가 나옵니다.
과거에는 산을 넘어가는길이 좁고 험했지만 지금은 교통상황이 좋아졌습니다.

우리의 문화유적지는 아니지만 근 현대사에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한 흔적들이 점점 사라지고있는 가운데 이곳은 비교적 잘 보존된 일본이 우리 강토를 침탈한 슬픈 유적지입니다.

 

이곳이 잘 보존되어 다음 세대에게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한 내용을 알려주고 그 실제적인 역사 흔적을 볼 수있도록 남겨 두어야 할 중요한 장소입니다.

 

일본군포진지
일본군포진지




가덕도는 부산 사람들에게는 별로 멀지않는 곳이지만 의외로 멀게 느껴지는 최 남단의 작은 섬입니다.

완전 섬이지만 지금은 거가 대교가 개통된 이후 자동차로 쉽게 갈 수있는 곳이 되었지요.

 

가덕도 외양포의 군사 시설 유적과 유구는 현재 군사 시설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지역의 일본군 침탈 흔적보다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역사 탐방 및 관광 나들이로 가덕도 외양포를 다녀온 사진 후기입니다.

가덕도 나들이를 가끔 하지만 대개는 눌차 지역이나 천성항을 쉽게 방문하곤 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제도로 직행하며 어쩌다가 가덕도를 내려 오드라도 눌차나 천성 쪽으로 접근 하곤 하지요.

최근에 부산 국제공항을 이 지역에 건립해야 한다는 논쟁 지역이 바로 대항과 새밭을 잇는 허리지역일 것입니다.

대항에서 국수봉 언저리를 넘어가면 작고 조용한 포구 외항포가 있습니다.

 

일본의 유물이지만 우리에게도 보존할 가치가 큰 이 외양포 일본군 포 진지와 막사들이 고스란이 남아있으며 이 지역 주민들은 오래된 일본군 병영을 임대해서 살고있습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서 원칙적으로 재 건립이 불가능합니다.

 

근세사에서 일본이 군사대국이 된것은 러일 전쟁에서 일본군이 승리한 후부터입니다.

그 역사적인 현장이 바로 당시 막강한 러시아 함대가 대한해협을 지날때 외양포 진지에서 육상포로 공격해서 크게 승리한 그 포대 진지입니다.

 

1905년 5월 18일 제정 러시아의 막강 발틱함대가 희망봉을 돌아서 그 먼거리를 이동하여 베트남의 캄란만을 출발해서 대한해협으로 항진하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은 전투태세를 갖추고 대기합니다.

 

전투태세를 갖추고 대기하는 일본연합함대의 기함 미카사가와 순양함 시나노마루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발견 5월 27일 13시 45분 일전이 시작되고 집중 포화를 받은 발틱함대는 어디서 날아오는 포탄인지도 모르고 폭침되며 일본군의 수뢰에 명중한 스바로프호는 침몰하며 전의를 상실한 러시아 사령관이 항복하면서 대한해협에서 충돌한 러일 해상전은 일본의 승리로 기록됩니다.

 

외양포 포진지
외양포 포진지

일본은 당시 가장 막강했던 러시아 함대에 초점을 맞추고 방어한다는 구실로 우리땅을 침탈하며 식민지화를 착착 진행하던 시기입니다.

 

외양포는 우리에게 피나는 교훈을 상기 하기위해서 당시 일본 침략의 가장 중요한 상징인 이곳을 보존하고있는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광광지화 하고있지만 교통환경등 때문에 아직도 접근이 그리 좋은 지역은 아님지만 전국적으로 많이 알지고있어서 외지 사람들을 자주 보게됩니다.


근 현대 개항기 역사 유적지로 분류하는 이곳의 위치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해안로 1319 대항동 산13-22

개항기 일본군의 군사 시설로서...

 

외양포포대
외양포포대

 

 

건립 시기와 목적을 알아보면 지정학적으로 가덕도는 대륙의 최남단으로서 해양 관문 부산항을 끼고 있으며 당시 일제가 구축한 진해 군항을 마주하며 외해와 내해를 동시에 엄호할 수있는 좋은 위치인것입니다.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인 가덕도 남단 외양포는 외부에서 노출되지 않은 좋은 장소입니다.

때문에 일제는 1904년 러일 전쟁이 나면 러시아 함대가 대한 해협을 지날것이며 그때 기습 공격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포대 진지를 설치하고 요새화 한 것입니다.

 

기록에는 당시 가덕도 주민들은 일제로부터 불법적으로 토지를 수탈 당하고 항의했으나  일본군은 총칼로 위협해서 삶의 터전을 모조리 군용지로 강제 수용당하고 퇴출 당한것입니다.

 

일제는 외양포에 포대진지를 구축하고 요새화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으로 1936년 건립된 ‘사령부 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라는 표석이 있습니다.

 

이 군사시설은 조국이 해방 될 때까지 우리 국민의 노역으로 보수를 해 가면서 일본군의 군사 시설로 사용된 곳입니다.

 

이곳을 둘러 보면 외양포 마을 뒤쪽 산비탈 부근인데 1936년 6월에 건립했다는 ‘사령부 발상지지’라고 쓴 비석돌을 입구에서 만나게 되며 포 진지로 들어가게 됩니다.

진지 입구에는 화장실 터도 남아있네요.

 

안으로 들어가면 병사(兵舍), 탄약고, 포대 터 등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잇네요.

입이 딱 벌어 질 정도로 견고하게 만든 탄약고나 방어 시설및 엄페 뚝은 현대전에서라도 경장한 미사일이 명중되어도 괜 찮을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시설이 워낙 견고하고 노출되지 않도록 잘 구축해 놓았기때문에 공중에서 바로 내려다 보지 않는이상 이곳에 요새가있다는것을 알 수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건물들의 용도는 대충 포상(砲床),콘크리트 탄약고,포측탄고(砲側彈庫),대피소, 방음벽 등입니다.

지금은 구조물위에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더욱 진지를 알아 볼 수없을 만큼 은폐가 잘 되었습니다.

현재 이지역 외양포 포대는 해방 된 이후 군사 시설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서 마을 전체가 국방부 소유라고 합니다.

현재 마을에는 상당수의 주민들이 거주하지만 가옥과 전답은 국가로부터 임대하여 사용하는 형식임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큰 불편을 겪으면서 살것으로 추측됩니다.

일본군 포대 막사
일본군 포대 막사
일본군 포대 요새
일본군 포대 요새
일본군 헌병부
일본군 헌병부
외양포포진지
외양포포진지
외양포포진지
외양포포진지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가덕도 일본군 포진지
가덕도 일본군 포진지
가덕도 일본군 포진지
가덕도 일본군 포진지
가덕도 일본군 포진지
가덕도 일본군 포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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