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름다운 봄날에(창작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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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사의 보은.


며칠 전 오래전에 상가 이웃에서 사업을 하던 지인 곽사장을 만났다.

그분은 조그만 전기공사업을 했었는데 ,
지금부터 약 40년전 쯤인가 되는 때 이겠는데,

요새는 작은 전기공사 하는 분들이 거의 없어진 상태이지만,

당시만 해도 각종 산업이 한참 탄력을 붙이고 있을 때라서 크고 작은 설비업이 많았고 따라서 전기공사가 꽤 많아서 소 사업자로서는 그런대로 재미를 보던 때였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전기공사가 뜸해지고 경기가 차츰 안 좋아지면서 그분도 주택의 작은 일거리도 가리지 않고 하다가 차츰 직원들도 내 보내 없어지고 어려울 때인데 그때 나도 그 거리를 떠났으며 그 후 얼마 안 있다가 결국엔 곽사장이 폐업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후 그분의 행방을 잊고 있다가 오늘 약 40년 만에 만난 것이다.

그분도 이젠 일선에서 은퇴를 하고 지금은 서울에 사는데,
무슨 볼 일 때문에 부산엘 왔다가 우연히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서로가 반가운 마음에 식사라도 함께 하며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려고 인근 음식점에 가서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놀라운 일을 알게 되었으며 그 이야기를 내가 겪은 사실과 함께 쓴다.

그러니까 그때 장사 할 때 의아 했지만 그냥 지났던 소름돋는 내용이다.   

나는 그분과 인근에서 가전제품 판매도 하고 수리도(당시에는 가전제품을 팔기도 하고 수리도 함께했음)하는 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비가 오거나 한가할 땐 가끔 바둑도 두고 때로는 고스톱도 하며 알고 지내든 사이었다.

나도 산업구조가 바뀌고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차츰 사업이 잘 안 되고 해서 점포를 몇 블록 떨어진 곳으로 옮겼는데 두 번째 이사이며 거길 나온 후 3년 좀 더 됐을 때이었다.
이사 온 물건 이것저것 정리 하느라고 한창 바쁜 오후 늦은 시간,

초봄의 해가 약간 질 무렵이지 ,
가계 앞 도로 가에 긴급 전기 공사라는 글씨가 쓰인 트럭이 하나 정차 하더니 낯익은 젊은이가 내리는데 ,
그 청년은 그때 이웃에서 전기공사하던 곽사장의 직원 배기사 이다.

환하게 웃으면서, 지나다가 들렸는데 ,
"내가 전기 시설이라도 해 드리고 갈게요." 한다.

마침 이사 와서 쇼윈도의 큰 조명 몇 개와 실내 편의 전기시설로 여러 개의 더 콘센트 등을 다른 좀  귀찮지만 해야 할 전기 시설이 좀 있었는데,
사람을 부를까 우리가 직접 할까 하던 차에 전문가가 알아보고 해 준다니 고맙게 생각하고 반갑게 부탁했다.
먼저 하던 곳에서 이사 올 때 뜯어온 재료로 공사를 하고  모자라는 것은 그가 차에서 가져 오기도 하면서 일을 한다.

오후 늦게 시작한 전기 공사는 해가지고 이른 저녁때쯤 끝이 났다.
나는 나대로 진열 상품이나 가계 구성 등 잡일 때문에 하루종일 바빠서 전기 공사를 어떻게 하는지 챙겨 보지도 못했다,

 

배기사가, 사장님!
오야 스위치 좀 올려 보세요! 한다.
(옛날 기술자들이 위로부터 전수받을 때 일본식 용어를 가끔 쓰는데 오야스위치는 메인스위치를 말한다)
 

시키는 대로 메인 브레커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쇼윈도와 외부조명 및 인테리어를 위한 보조등까지 빠짐없이 밝고 예쁘게 점등된다.

이상 없지요?
아 , 그래 ,
잘 됐네...

그리고는 한쪽 옆에 놓인 임시 탁자에 마주 앉아서 일하면서 먹든 음료수(사이다와 주스로 기억됨)를 종이컵에 부어주고 부어 받아먹으면서,

고생했는데 노임은 드려야지...
얼마나 드릴까? 했다.

웬 , 사장님도, 지나다가 할 일도 없고 해서 아는 처지에 도와드린 건데 무슨 돈을 받아요... 하며 맑게 웃는다.

그래도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 보통 일당보다는 좀 더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폐를 줬다.
머뭇머뭇 하더니만 ,
결국 받아서 항공점퍼 같은 푸른 유니폼 상위 안 주머니에 넣더니 , 이상하게 다시 꺼내서 세어본다.
나는 탁자에서 일어나면서 수고했네.

다음에 연락하도록 명함이나 하나 주게..

마음속으로 그가 독립해서 자영업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의 근황을 물어볼 만큼 여유로운 때가 아니라서 나중에 자세히 알아볼 요량으로 명함을 받고 내 볼일을 봤다.

 

힐끔 기사를 봤는데 탁자에서 한 손에 돈을 쥐고 한 손으로 낮장을 하나식 탁자에 놓으면서 세고 있다.
다해봐야 오천 원짜리 몇 장하고 만 원짜리 몇 장 등 굳이 셀 필요도 없는 액수인데 정성껏 세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잊어버리고 있는데,

문 앞에서 갑니다-아... 하며 길게 말하면서 또 올게요...
하는 소리에 문 앞을 보니까 인사를 하며 나간다.

 

앉았던 탁자는 음료수 병 하고 컵이 가지런하게 한편으로 치워 저 있고 남은 부속품 몇 개도 함께 정리해 두고 간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나는 조금 후에 바닥까지 마지막으로 치우고 문을 닫고 저녁식사 하러 가려고 했다.
그래서 작업하려 임시로 차린 탁자와 기물들을 밖으로 꺼내려고 하는데 아까 그 탁자에 내가 준 돈이 그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아!
잘못 봤나?
아까는 없었는데..

그가 안 받으려고 하 드니 받는 척하고 결국 그대로 두고 갔구나.

음...
꼭 이 보답은 해줘야 돼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이런 종류의 장사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돈 되는 일거리를 소개해 주는 것으로 갚는 것이기 때문에 그도 나에게 영업 차원에서 그리 한 것으로 이해는 했다.
그러나 젊은 사람으로서 주는 돈을 안 받는 것이 기특해서 더욱 신경 쓰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 후 나도 새로 옮긴 장소에서,
하는 장사가 바쁘고 딴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가,

아는 사람이 집을 하나 짖는데 야물게 전기 시설 할 사람 좀 소개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제야 배기사를 떠 올리게 되고 일거리를 소개해 주려고 그때 받은 명함을 찾았는데 이게 오신일 인가...
업자들 명함을 소홀히 하지 않는데 명함 보관 통에서 유독 그 명함만 없는 게 아닌가..

배기사라고만 알고 있는데,
전화번호부에서 찾을 길이 없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먼저 알고 지내던 그 전기 사장님께 물어봤더니 그 기사 나간 지 오래돼서 모른다고 했었다.

지인에게 야무진 전기기사를 소개해 주지 못해서 실없어진 느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젊은이로부터 은혜를 입고도 갚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 더 안타깝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도 어쩔 수 없이 지나오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나고 40년이 지난 오늘 그 사장님을 만나게 되어 식사를 하면서,
그 배기사 일이 생각나서 물어본다.


"그때 그 배기 사는 참 사람이 성실하고 좋았는데,
사장님 떠나고 독립해서 성공은 했는가요?"

곽사장,
의아해하면서 멀끔히 처다 보더니 ,
"모르는 기요?. "한다. 

나도 "멀 말이요?"

에참 그때 거길 떠난 후 얼마 안 있다가 밤에 일하고 오다 뺑소니 덤프트럭에 교통사고 당해서 죽었다 아니오?

"아! 그래요?"
"어디서 그렀는기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이사 와서 개업한 가계부근에서 얼마 안 떨어진 도로가 아닌가?

순간 이상한 충격이 머릿속을 순간적으로 전류처럼 지나가고...
"그때가 언젠가요?"
하고 되물었다.

아..
그러니까...

그때가 내가 떠나고 당신도 이사 갔다고 할 그 무렵인데..
그때 당신이 나한테 걔 전화번호 물어볼 때 이미 죽은 지 한 일 년 됐겠네..

그럼 그때, 와? 나한테 모른다고 했소?

음....

사실 그때 나는 사업도 안돼서 어려운데 그래도 없는 돈 긁어서  걔 사망사고 수습하고 난 후유증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워서 사는가 엄청 시럽을 때인데,
죽은 놈 한테 무슨 공사 준다고 전화번호 물어보길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당신한테 모른다고 한 거뿐 이라요..
죽은 줄 모르니까 전화했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까 미안하네 " 한다.

아!
순간 머리에 소름이 쫙 끼친다.

그래도 침착하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때 돈이 책상 위에 그대로 있은 것뿐만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명함은 애당초 받은 것도 아닌 것이라는 것을....

배기사 하고 나하고 종이컵으로 두 잔 따라 마신 사이다병이 빈병이었는데,
책상 치울 때 넘어진 병에서 남아 있는 사이다가 콸콸 쏟아진 기억이나..

공짜로 공사한 것이라서 마음 쓰지는 않았지만,
스위치를 올렸을 땐 분명히 다 커졌든 전등이었고,

전기 공사하다가 전선이 모자란다고 자기 차에서 몇 메터를 가지고 와서 연장해 가며 일한 걸 아는데,
다음날 저녁에  불이 안 들어와서 보니까 전선이 모자란 대로 있고 그 부분의 조명이 연결된 있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마음속으로 약간의 의구심은 있었지만,
찾어서 따질 수도 없고 별거 아니기도 해서 내가 전선을 조금 이어 붙여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가지 기억으로는 그가 처음 일해 주겠다고 들어왔을 때 반갑다고 악수를 청했는데,
어른이 손을 내 밀고 있는데도 손을 안 주는 게 아닌가..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아! 어디서 일하고 오는 중이라서 손을 씻지 않아 더럽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가 미안해할까 봐 얼른 악수하려는 내 손을  취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또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쭈뼛하게 만든다.

배기 사는 의령의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중학교를 나온 후 부산으로 내려와서 전기일 배우며 일해서 겨우 끼니만 해결하다가,곽사장 밑에 일할 때가 처음 기사 대우를 받고 제대로 된 월급을 받은 첫 직장인데,

그때 그의 아버님이 큰 병으로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이웃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길-흉사를 서로 돌보기는 하지만,
남의 집 직원 집 일까지 도와주지는 않는데,

유독 배기 사는 몸도 가볍고 이웃 일 들을 잘 도와주는 착한 청년으로 인정받아서 상인들과 함께 초상 칠일이 암울한 상태의 그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식사를 한 후 곽사장은 떠났고 그 후로도 ,
그 상가에서 알고 지내든 사람을 만나면 배기사 이야기를 가끔 하게 되고,


배기사의 "긴급전기"가 쓰인 푸른색 밴 트럭과 안전마크가 새겨진 푸른색 항공점퍼를 입은 배기사가 나타나서 불이 안 들어오는 전기문제를 형편없이 해 주고 간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도 나는 배기사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세월이 가고 철이 바뀌는데도 ,
가끔씩 상냥하고 가벼운 몸동작으로 , 
안전제일 마크가 선명한 항공점퍼를 입고 긴급 전기라고 쓰인 푸른 밴 트럭을 몰고 다니는 것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 이 화창한 봄날..
화장실의 백열등을 절전형 신형 엘이디 램프로 갈아 끼우다가,
내 옆에 나타난  푸른 항공점퍼를 입은 배기사가 "내가 할게요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 ,
아! 집에 까지 오는구나....!

이 사람, 배기사!
우린 충분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제 그만하고 쉬게나."라고 말한 후 쳐다보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만약 마누라가 옆에 있었다면 저 양반 무슨 헛소리 하는구나!
소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내 눈엔 안 보이지만,
여보게 배기사!!
정말로 올봄엔 좋은 아가씨 만나서 함께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게나...!.

세월이 가고 ......

가로수 벚꽃 잎이 훗 날리는 봄볕이 맑은 어느 날 하늘을 보니 빛나는 커플 한쌍이 태양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눈이 부셔 오래 처다 보지는 못했다.

 

또 세월이 가고...
배기사를 보지 못했지만 이 아름다운 봄날 불현듯 생각난다..!!!.

이 아름다운 봄날에..
이 아름다운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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