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7.27 통도사에서 보는 특별한 전각
  2. 2014.11.25 원효 스님이 다니든 그 길에서.


통도사는 가 볼때 마다 느낌이 다르고 거대한 가람 경내의 구성과 전각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경내 암자들도 하나같이 독특한 특징을 가진 큰 가람이다.


통도사 큰가람 마당에 심오하게 배치되어 있는 전각들을 다 살펴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각 전각들의 배치나 특징등으로 볼때 여느 사찰과는 확연히 구분되고 뛰어난 예술적인, 또는 최고의 건축미를 가진 대 가람이다.
그래서 국지대찰이란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통도사에있는 전각중에서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두개의 전각을 소개한다.
세존비각과 개산조당이다.
거의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두 전각의 경중에 깊은 뜻이 없을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세존비각 世尊 碑刻

비각은 원래 비석을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간결하게 세운 건물인데 어쩐지 불교적 느낌보단 우리네 풍습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여느 비각처럼 비석 주위에 사각형으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대부분의 모양과 다르지 않지만 주위에 닜는 전각들과 잘 매칭되는 예술적 모양을 가지고 있다.


세존비각이라고 현판이 되 있다는것은 세존에 대한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는 말이다 .


그래서 이 비각이 관심이 가지만 아직 비문의 내용은 모른다.

석가세존의 비가 있다는것이 많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기회가 될때 세존비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 볼 것이다.


세존비각 世尊 碑刻SONY | ILCA-77M2세존비각 世尊 碑刻



개산조당(開山祖堂)

세존비각 조금 오른쪽으로 보면 개산조당이 있는데 용화전 옆 서쪽이다.
말할것도 없이 통도사를 창건한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사당으로 이해 하는데 정확히는 이분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으로 들어가는 정문을 말한다.


開山祖堂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문인데 해장보각의 조사문으로서 해장보궁(海藏寶宮)으로 통하는 문의 3칸 건물인데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구조로서 중앙의 칸이 양 측면 칸보다 약간 높게 솟아있어서 "솟을삼문"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현판이 없는 양쪽 문도 두 쪽의 널문이며 여닫을 수 있도록 되있고 건물형식은 조선말기 형식이라고 하며 일반적인 사당(祠堂)에서 볼 수 있는 솟을삼문과 흡사한것으로 본다.



영조 3년(1727)에 창건되엇다고 하는데 몇차례 중수되었는데 현재건물은 고종 4년(1867)에 많이 개축된것이라고 한다.

개산조당(開山祖堂)SONY | ILCA-77M2개산조당(開山祖堂)


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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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스님이 다니든 그 길을 걸으며.


경주 신라역사탐방 여행길에서 빠질수 없는 분황사(芬皇寺)에서 원효이야기를 들으며 모전석탑(模塼石塔)을 둘러본다.

일천300녀년의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 분황사(芬皇寺) 입구에서  원효학연구원의 입간판을 보게되어 누구에게 감사해야할지는 모르지만 좋은 감정이 솟는다.


원효대사라 부르지만 살아생전 그는 이미 소성거사(小性居士)가 아니든가.

그의 일심사상(一心思想),화쟁사상(和諍思想),무애사상(無碍思想)을 나같은 여행객이 알리가 없지만 그래도 열심이 설명하는 어떤분 때문에 이렇게 글로서 옮길수 있어서 기쁘다.


아들 설총(薛聰)을 본 후에 파계(破戒)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원효사상이 아닐런지 생각해 본다.
그후에 이곳 
분황사(芬皇寺)에서 화엄경(華嚴經),사십회향품소(四十廻向品疏)를 저술했다.
그리고 그의 지고한 불전해석서인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으로 왕실에서 강론을 한 자취라고 하는 길을 따라서 아주작은 흔적이라도 느껴 보려고  분황사(芬皇寺)를 찾았다.



분황사(芬皇寺)


신라 문무왕 재위때에 원효가 주창한 불교적인 사상이 독창적으로서 당시에 해동종(海東宗)이라고 불린적이있었다.그 불교사상이 분황사(芬皇寺)에서 정립되었다고 해서 분황종(芬皇宗)이라고도 한다.

다라서 오늘 방문한 이 분황사(芬皇寺)는 원효스님과는 가장 밀접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원효와 의상은 여러 부분 많이 가갑게 이야기 되지만 또한 많이 다른부분이 보여진다.
두 스님이 한반도 남부지역 많은 사찰에서 불교사상을 집대성하고 정립하며 수확한 흔적들이 있지만 이곳 
분황사(芬皇寺)는 원효스님의 가장 두렸한 흔즉이 남겨진 곳으로 생각한다.


원효스님이 입적한후 아들 설총(薛聰)이 원효의 진영을 만들어 공경하는 예배를 올린기록이 있다.

일년(一然)의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진용(眞容)은 고려말 까지 실존했으며 이 진용은 설총이 예불할때 고개를 돌려서 바라본다는 기록이 있음으로 삼국유사를 쓸때까지는 존재했다고 보는 것 이다.


이 진용(眞容) 사람의 모습을 사실대로 그린 얼굴모습이거나 형상을 말 하는것이며 원효의 진용은 소상(塑像)즉 흙으로 빚어져서 만든 토상이라고 한다.


아래는 분황사에서 담은  몇장의 사진입니다.


당간지주SONY | DSLR-A300분황사 당간지주


분황사 모전석탑(模塼石塔)SONY | DSLR-A300분황사 모전석탑(模塼石塔)


분황사 모전석탑(模塼石塔)SONY | DSLR-A300분황사 모전석탑(模塼石塔)


분황사 모전석탑(模塼石塔)SONY | DSLR-A300분황사 모전석탑(模塼石塔)


분황사 원효연구원SONY | DSLR-A300분황사 원효연구원


 


 

원효(元曉, 617년 ~ 686년 4월 28일(음력 3월 30일), 경상북도 경산시)는 삼국시대와 신라의 고승이자 철학자, 작가, 시인, 정치인이다. 원효는 법명이고, 속성(俗姓)은 설(薛), 속명은 사(思),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며, 별명은 모(毛), 호는 화정(和淨)이다. 아버지는 내말 설담날이며, 태종무열왕의 둘째 사위이고 설총이 그의 아들이다.


별명은 소성거사(小姓居士)이며 이외에도 서곡사미(西谷沙彌), 백부논주(百部論主), 해동법사(海東法師), 해동종주(海東宗主)라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원효보살, 원효성사(元曉聖師)라 존칭되고, 화쟁국사(和諍國師)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본명은 설사(薛思)이나, 보통 한국에서는 법명을 따라 원효대사로 불린다.

경주 설씨와 순창 설씨의 중시조인 설총의 생부이며, 한국불교 최초의 깨달은 스님, 한국 최초의 대처승으로도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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