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위(百濟王位) 계승(繼承)과 계보(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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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9. 9. 09:19
백제왕위(百濟王位) 계승(繼承)과 계보(系譜).
백제(百濟)는 기원전 18년에서 기원후 660년까지 한 반도 남서부에 자리잡고 이어갔던 한국의 고대 국가이입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신라와 함께 존재했던 국가로서 당시에 가야도 국가로 본다면 일부 겹치는 동시대에 존재했다고 해서 때로는 4국시대에 존재한 것으로도 말 하기도 하며 남부여(南扶餘)로도 불립니다.
백제(百濟)는 영어로 Baekje로 표기하며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 시대를 구성했으며 시조는 부여·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 집단으로 전해집니다.
마한 54개 연맹체 중 하나인 백제국으로 시작해서 369년경 근초고왕 때나 혹은 530년경 성왕 때에 마한 전체를 정복합니다.
왕성했던 근초고왕 때를 비릇해서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대립하며 한반도 남서부 전역을 장악한 강력한 때도 있었습니다.
백제의 건국역사는 설화로 알려진것 외에는 없으며 3개의 설화가 있으나 온조설화를 역사에 많이 인용하는 것으로 볼수 있습다.
백제는 성왕 16년 538년에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천도하고 남부여(南扶餘)라는 국호를 사용했습니다.백제의 국호는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와 고려시대 신라계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이 서로 다르며 어느 쪽 기록이 정확한지는 현재로선 구별 할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위주로 인용합니다.
백제왕위 계보 계승도.
삼국사기를 근거로 보는 백제의 탄생과 역사
백제 건국 설화에 따르면 졸본부여 사람인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함께 내려온 뒤 비류는 미추홀에,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각기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
비류가 죽은후 신하와 백성 모두 위례성으로 옮겨서 백제(百濟)라는 나라로 성장한다.
온조설화 외에 비류 혹은 구태, 도모가 건국 했다는 비류설화, 구태설화도 동시에 존재한다.
온조왕이 시조이고 기원전 18년 현재의 한강 하류의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하고 건국한다.
삼국지(三國志)에는 백제가 마한의 일부였다고 한다.
마한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있던 삼한(三韓) 중 가장 큰 정치 집단이며 54개 부족국가 연맹체다.
마한의 54개 부족국가는 지금의 경기도·충청북도·충청남도·전라북도·전라남도에 해당한다.
한때는 강원도 서부와 황해도 남부까지 세력권으로 했다.
그 중에서 북방에서 이주해온 부여족(扶餘族)계통인 온조(溫祚)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백제국(伯濟國)이 마한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하고 통일한다.
백제국은 1세기에서 3세기에 걸쳐서 한반도 중남부의 소국들 및 한사군과 합께 발전하며 4세기부터 충청도, 전라도로 세력을 확장했다.
4세기 중엽 백제 근초고왕때 남부 부족국가들을 대부분 통일한다.
이후 북쪽으로의 진출하다 고구려와 대립하고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한다.
5세기 초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아신왕이 항복 하기도 하고 개로왕이 전사하기도 하며 당한다.이후 475년 한강 유역을 상실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다.
이후 신라와 동맹하고 고구려와 맞선다.
성왕때 신라와 고구려를 협공 한강 유역을 수복한다.
수복후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 유역을 다시 상실한다.
660년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한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 멸망한다.
멸망후 4년동안 백제 부흥운동이 일고 백제 왕자 풍을 왕으로 항쟁한다.
내분으로 4년만에 이마저도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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