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나루 아래에

구포나루 아래에






석양이 비치는 구포나루와 전마선



그옛날 구포나루의  보부상과 돗단배는 사라지고 현대식 구포대교에 자동차가 달리고 전동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구포다리아래에 한적하게 떠 있는 전마선 한척이 구포장터와 김해지역을 이어주던 오래된 구포나루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석양이 강물을 비추는 구포나루에서 보는 풍경은 바쁜 도시가 잠간 멈춘듯 합니다. 
  
아픈 역사의 한 부분에서는 바다와 내륙을 잇는 낙동강 상업교역 중심지인 구포에서 일제의 수탈 기지가 된적도 있습니다.김해평야 등에서 생산된 질좋은 미곡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장소였던적이 있는 곳입니다.
 
원래 구포나루 언덕은 지금의 구포역에서 약 100m아래부분입니다.
1682년 숙종9년 에 남창(南倉)이 들어서 있던 곳이지요.
남창은 3가지 중요 세제인 전세(田稅), 대동미,호포 또는 군포를 현물로 징수하던 곳이랍니다.

구포나루가 가장 번성했던 때는 구한말부터 광복 전후까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구포나루가 한창 활발하던 때는 보부상들의 배가 별도로 운행되기도 했답니다.
활발한 보부상들의 배는 낙동강 중류 화원, 상주, 안동까지 왕래했다고 합니다.
그 때 보부상들이 부르던 노래중에서  ‘구포 선창노래’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낙동강 칠백리 배다리 놓아 놓고
봄바람 살랑살랑 휘날리는 옷자락
물결 따라 흐르는 행렬진 돛단배에
구포장 선창가엔 갈매기만 춤추네
 
역사속으로 사라진 구포다리 부근에 지금은 새로 만든다리와 입체교차로 등이 복잡하게 설치되 있지만 그아래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것입니다.
아련히 지나간 흔적들을 더듬어 보며 구포역에서 바라보는 석양에 비친 전마선 한척이 외롭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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