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엄청스런 눈폭탄 속에서..

아침부터 부산엔 눈이 옵니다.

시내에선 비가 내리지만요.

좀 일찍 식사를 마치고 금정산 식물원앞으로 동문을 등산 기점으로 삼고 걸었습니다.
금정산 입구에서 자동차를 통제해서 차도로 걸을 수가있어서 좋네요.

부산대학교 뒤편까지는 질퍽거리다가 동문가까이서 부터 눈이 장난이 아닙니다.
제설차가 두대 와서 눈을 밀고 있군요.

동문을 들어서니까 완전 미답지입니다.
아니 가는 발자욱 하나는 있긴한데 사람은 없고 금정산을 전세낸건 확실합니다.
동문을 지나니가 여기저기서 "뚝" " 뚜둑 " 하는소리가 들리고 나무가지가 뿌연 눈보라를 날리면서 그대로 부러져 내려앉습니다.

부산에서 이런 눈 무게를 경험하지 못한 나무가지들이 부러집니다.

올라오는 도중에 길가에 소나무 가지들이 나딩구는 이유를 이제사 알았습니다.

북문 방향으로 가긴하는데 길을 분간 할수가 없네요.
당분간은 너르고 좋은길이라서 짐작하고 걸을수가있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도저히 길은 모르겠고 대충 걷는데 몇번을 주저앉았는지 모릅니다.

눈은 줄기차게 계속해서 내립니다.
적설 뚜께는 점점 높아지고 완전 눈 폭탄 수준입니다.
눈 구경 좀 하려고 하다가 큰 코 다치는 격입니다.

눈이 너무 많이 쏟아지니까 설화고 설목이고 설경이 다 무슨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기 싫고 그냥 힘듭니다.
아이젠도 적당히 미끄러울때 필요하지 이렇게 많은 눈속에ㅔ 푹푹 빠질때는 아무 소용없네요.

어디 앉아서 멀 좀 먹고 쉬려고해도 앉을곳이 없어요.
눈위에 앉으니까 금방 춥고 습기차서 앉을 수가없네요..

우여 곡절끝에 원효봉 아래까진 갔는데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동문으로 돌아왔습니다.
비옷을 입긴했는데 눈이 온뭄을 적시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네요.

아침부터 줄기차게 솓아지는 눈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좋은 사진 찍겠다고 가지고간 카메라는 비닐로 둘둘 말아 쌋지만 눈녹은 습기가 침투하고 렌즈에는 끊임없이 눈방울이 달라붙어서 사진을 직어도 시야가 뿌옇고 초점도 잘 안잡힙니다.


폰카가 훨씬 좋습니다.

렌즈가 작아서 손가락으로 한번 문지르면 말끔하게 사진이 찍힙니다.


눈 안오는 부산에서 눈 구경하려고 자신만만 올라간 금정산에서 조난당하기 일보직전에 눈 냄새 지겹게 맡고 되돌아왔습니다.


내일이라도 하늘이 걷히고 시야가 트이면 사진찍으러 다시 갈 것입니다.
오늘 담아온 사진입니다.

금정산 제설차SONY | ILCA-77M2금정산 제설차
금정산 제설차

눈속에 자동차 고립SONY | ILCA-77M2눈속에 자동차 고립

자동차가 눈속에서 고립됬나 봅니다.
고장인진 모르지만 그냥 두고 가버렸군요.


동문 설경SONY | ILCA-77M2동문 설경

평소에 보던 동문이 아닙니다.

눈속에 포근해 보이는 멋진 동문입니다.


동문앞 경치입니다.SONY | ILCA-77M2동문앞 경치입니다.

눈오는 동문 전경SONY | ILCA-77M2눈오는 동문 전경

동문 설경인데 줄기차게 솓아지는 눈발때문에 사진을 찍을수가 없습니다.
렌즈에 눈이 금방 달라 붙네요.



눈 덮인 금정산성SONY | ILCA-77M2눈 덮인 금정산성

동문을 지나서 성광쪽 난간입니다.



SONY | ILCA-77M2

설목의 근사한 모습입니다.

여기저기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설목PANTECH | IM-A860K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설목

눈덮인 성곽과 군기 PANTECH | IM-A860K눈덮인 성곽과 군기

성곽위의 군기가 멋지게 나부낍니다.


눈과 우산SONY | ILCA-77M2눈과 우산


    거추장 스러워서 들고온 우산을 접어 넣으며 한컷했습니다.
#부산눈 #부산폭설 #부산대설 #금정산눈 #금정설경 #금정산눈폭탄 

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댓글을 달아 주세요

 

토요일 일찍 부산출발 빠른 등산 초입 불승사입구 주차장에서 채비를 챙기며 바라본 신불산(1159m)능선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설산(雪山)능선이 은빛으로 빛나며 소나무 숲 뒤로 멀리 하얗게 보입니다.

이번 겨울 눈다운 눈 구경 한번 못하고 겨울 산행을 마무리 하나 했는데 뜻밖의 행운을 만나서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들 한팀이 함께 출발하면서 그들도 눈소식 모르고 왔다는것을 보면 간밤에 영남알프스를 하얀눈이 덮었나 봅니다.

 

사실 나는 산행 하면서 특별한 행운 을 잘 경험하는사람이라고 자랑하곤 하는데 오늘도 행운임엔 틀림없습니다.


날씨는 그다지 춥진않고 여느 봄날같은 느낌이라서 좀 불안했습니다.
저기까지 오르기 전에 혹시라도 눈이 다 녹아버릴것 같은 우려때문입니다.

그래도 산행은 나의 페이스대로 천천이 쉼터의 규칙과 속도의 규칙을 지키면서 신불재를 거쳐서 신불산 정상까지 무사히 당도하고 원점회귀한 설국(雪國)으로의 환상적인 여행기를 사진과 함께 씁니다.

불승사 등산 초입에서는 아주 편한 산행이 이어지고 5부능선을 접어 들때까지 잔설하나 보이질 않습니다.
약 7부능선을 진입하면서부터 잔설이 보이기 시작하고 기온도 약간의 냉기가 느껴지면서 급속도로 적설량이 증가합니다.

 

다행이 설질(雪質)은 부드럽고 표면이 얼지않고 녹는 형태라서 뽀드득 뽀드득하며 발이 빠지기때문에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스펀치를 걷는것처럼 부드럽고 미끄럽지 않기때문에 아주 편한 산행길입니다.

아이젠이 배낭안에 있지만 장착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시 나는 행운의 산인이거든..하면서 웃습니다. 
8부능선쯤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적설량이 많고 설목(雪木)들이 그림보다 더 이쁜 환상적 형태가 나타납니다.

설화가 예쁘다고 하지만 얼음이 나뭇가지에 붙어 영롱하게 빛나는 빙화목(氷花木)은 더 멋집니다.
햇빛에 얼음꽃이 반짝이는모습이 얼마나 근사한지...

 

정상 가까이 산죽지대의 몽환적 설경을 보면서 곧 신불재를 들어섭니다.
산인들이 많지않아서 조금은 썰렁하지만 아름답게  눈덮인 신불재를 전세 낸것같은 느낌입니다.

 

잠시 신불재 인증사진 몇장 찍고 물 한모금 마신 후 정상으로 오릅니다.

나무계단이 많은 정상 가는길도 전혀 얼지 않고 포근한 눈으로 스펀치같은 느낌입니다.


가다가 몇번씩 뒤돌아 보고 사진 찍느라 산행속도는 영 나질 않습니다.

이윽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영남알프의 주 능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지 말로선 다 할수없을 정도입니다.

사진으로도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무거운 카메라들을 메고온 사진 매니어들은 더러있습니다.

 

아래에 산행하면서 담아온 산진 몇장 올립니다.
사진의 순서는 PC에서 무순으로 올려진것입니다.

EXIF정보를 보면서 등산 시간을 가늠 할수는 있습니다.


참고로 불승사가 가장빠른 신불산 초입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등산 초입에있는 작은사찰은 건암사이며 좀 아래쪽에 불승사가있는데 산행전에 참배를 한다거나 화장실을 이용하는곳은 검암사일것입니다.


신불재 설경SONY | ILCA-77M2신불재 설경


신불산 설경SONY | ILCA-77M2신불산 설경

신불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산인과 영축산 방향의 능선입니다.


신불산 암능 설경SONY | ILCA-77M2신불산 암능 설경

신불 암능 일명 공룡능선의 등뼈가 눈으로 덮였지만 험한 이빨은 그대로입니다.
등산 초보인 어떤 분이 저곳 능선을 올라오고있었는데 내려가지는 앟을것이라고 해서 다행이었네요.


신불산 설경SONY | ILCA-77M2신불산 설경

정상가는 길이 멋집니다.


신불산 설경SONY | ILCA-77M2신불산 설경


신불재에서 정상가는 입구 눈이 녹으면서 얼음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간월산 설경SONY | ILCA-77M2간월산 설경

신불산 정상에서 간월산 방향으로 뻗어있는 멋진 능선입니다.


영축산 설경SONY | ILCA-77M2영축산 설경

영축산 방향으로 벋은 능선입니다.
하얀등산로가 혈맥처럼 멋집니다 .



정상에서 보는 멋진 모습입니다.



신불산 설경SONY | ILCA-77M2신불산 설경

아침에 신불산 등산로 들머리에서 바라본 신불 공능입니다.


신불산 정상 인증샷SONY | ILCA-77M2신불산 정상 인증샷

정상에서 기념으로 인증샷 하나는 남겨야했습니다.


신불산 설경SONY | ILCA-77M2신불산 설경

신불재 입구에서 산장을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더 많은 사진이 있지만 편집이 되는대로 다음에 올리려고 합니다만...
#간월산설경, #눈오는신불산, #불승사, #빙화, #설국(雪國), #설목(雪木), #설산(雪山), #설질(雪質), #설화, #신불공능, #신불공릉, #신불공릉설경, #신불산, #신불산등산기, #신불산산행기, #신불산설경, #신불산암능설결, #신불재설경, #영축산설경,

 


 

 

 

 

 

 

 

 

 

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moneycoach.kr BlogIcon 소액결제 2018.08.10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전생 어머니를 만난 이야기의 주인공
동래부사 유심(東萊府使 柳沈)의 애틋한 이야기


전생어머니를 만난 실존지역 동래성 내성지구는 지금의 칠산동이나 수안동 부근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배경으로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가 옮겨저서 지금은 부산박물관 뜰에있는데 맘먹고 찾아서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동래부사 유심(東萊府使 柳沈)의 선정비를 보면서 역사적인 이야기를 재 편집 해 봅니다.

동래는 부산을 대표하는 옛날 동래부의 중심지로 동래부 관아에 얽힌 이야기들은 이 외에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실존 인물로서 선정을 베풀어 그의 선정비가 잘 남아 있는 동래부사 유심 이야기는 전래동화처럼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많은 각색이 있어 비슷비슷한 것들이 많지만 바로 이곳 동래가 그 진원지입니다.


유심(柳沈)의 선정(善政)비는 조선 중엽 동래부사를 지낸후 제작된것으로서 기록이 잘 보존된 자료이며 석물은 부산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을 뿐입니다.
  

이 비석의 당사자인 유심(柳沈)에 대한 이야기는 동래 내성 안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더 실감나며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이 든 분들은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실존인물 동래부사 유심이야기인줄은 모릅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는 하나의 설을 증명하는듯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이룬 내용과 지극한 염원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SONY | DSLR-A300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

이 이야기는 조선 중기 어느 봄날 동래부사가 행렬의 앞뒤에서 악사들이 연주를 하며 환영하는 화려한 부임행차를 하면서 내성 안으로 들어옵니다.


성내 주민들은 너도나도 새로 부임하는 부사의 행차를 구경하러 길가를 메우는 시끌벅쩍한 날이었습니다.

이날 성내 가난한 산비탈 동네에 남편을 일찍 보내고 어린 아들과 단둘이 사는 한 젊은 과부도 아들의 손을 잡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틈새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 아낙은 당시 네살배기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성숙되고 잘생긴 얼굴에 총명한 어린 아들을 의지하며 살았드랍니다. 


성대한 환영 행사의 주인공은 늠름하고 당당하게 큰 말을 타고 화려한 의관을 입고 고을의 백성들을 두루 내려다보며 마침내 과부와 어린 아들의 앞을 지나갑니다.

지금도 동래의 향토 민속은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그 역사는 조선 시대로 또는 더 이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날도 새로 부임하는 환영 행사는 동래 명기(名妓)들의 팔선녀(八仙女), 대군(大軍 ) 등의 놀이로 흥을 돋우며 말을 타기도 하면서 행사는 고조됩니다.

이런 성대한 행사 때는 동래 주민뿐만 아니라 이웃 고을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 와서 환호하는 잔칫날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좋은 행사의 주인공인 신임 동래부사를 바라보던 이 어린 아이는 갑자기 또렷하고 자신 있게 "어머니, 나도 커서 저렇게 훌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엄마는 아들에게 할 말을 잊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으로 총명한 아들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너는 그렇게 될 수 없단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명한 아이는 다그치며 끈질기게 그 이유를 묻기 시작합니다.
“어머니, 왜 저는 커서 어른이 되면 저렇게 될 수 없습니까?"라고 시작해서 마침내 슬픈 어머니의 목소리로 하는 천출은 벼슬을 할 수 없는 이유까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스스로 천민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희망이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벼슬은 천민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이며 아직 체념해야 하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알고 만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실망과 좌절이 어린 가슴을 짓누르게 되고 어린이는 감당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울다가 지쳐서 쓰러지고, 또 깨어서 울다 지치기를 반복하며 음식도 먹질 않다가 아이는 그날부터 시름시름 원기를 잃고 얼마 뒤에 병을 얻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들이 과부에게서 떠나고 슬픔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만났습니다.

“어머니! 너무 슬피 울지 마세요. 저는 한양에서 재상을 지내는 유씨 가문에 태어나서 잘 살고 있답니다."
"어머님, 이젠 부지런히 공부하면 벼슬도 할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날은 밝았습니다. 


세월은 흐르는 강물처럼 슬픔도 좌절도 함께 가져가고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후에 과부도 백발 노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지하던 아들을 잊을 수는 없었으며 아들의 제삿날엔 정성껏 제사상을 차려놓고 그때를 생각하며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통곡을 합니다.

울면서 “내 아들아 많이 먹어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놓았단다.” 하고 밤을 지새우곤 합니다. 

  

한양의 유씨가문에서 총명하게 자라는 유심은 이상하게도 매년 같은 날 밤에 꿈속에서 어느 초라한 초가집에 들어가게 되며 거기서 어떤 제사상을 받고 음식을 잘 먹곤 합니다.

유심은 양반가의 훌륭한 도령으로 성장해서 나라에서 치르는 과거에 당당히 급제한 후 마침내 오늘 동래부사로 부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래부사 유심은 처음 받은 관직으로 처음 오는 남쪽 끝의 동래 땅에서 환영을 받으며 간간이 바라보는 노변이나 풍경이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음을 느끼게됩니다.

언젠가 어느 날 꿈속에서 와 본 적이 있는 그런 느낌말입니다. 

  

부임 후 따뜻한 어느 봄날 복사꽃 흐드러지게 핀 부임 첫 생일을 맞았습니다.
지금도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특별 배려를 하듯이 부사도 생일날 한가한 마음으로 내성을 한 바퀴 돌다가 문득 낯설지 않은 비탈길 동네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꿈속의 그 집이 생각나서 곧 유부사는 관아의 한 평인과 함께 자세한 동네의 내력을 물은 뒤 꿈속에서 본 길을 마침내 찾아 나섭니다.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SONY | DSLR-A300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


해는 뉘엿뉘엿 어느덧 어둠이 깔리는데 부사는 무언가에 홀린 듯 누구에게 이끌리듯 길을 걷습니다.

조금 후에 나타난 길은 언제나 다니던 길같이 익숙한 비탈길입니다.


이윽고 꿈속에서 보던 기울어진 작은 초가집을 만납니다.

초가집에서는 너덜거리는 문틈 사이로 희미한 호롱불이 보이고 반쯤 열린 방문 사이로 백발 노파가 제사상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유부사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기가 부사라고 밝힌 후 백발 노파에게 정중히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물어 봅니다. 


"노인은 누구 제사이길래 이리 슬피 우시는지요?" "본디 일찍 청상이 되어 아들 하나를 의지하며 살았는데 그 어린 것이 꿈도 못 펴 보고 4살 먹은 해에 떠났답니다.

오늘이 그 불쌍한 내 아이의 기일이라서 혼이라도 불러볼 요량으로 생전에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고 보니 복받치는 설움 때문에 운답니다."

유 부사는 그제야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이 떠오릅니다.
노파의 말은 계속되고, 아이가 죽은 후 얼마 뒤에 '꿈속에서 한양 유씨 가문에 태어났다고 했었습니다.' 까지 말하게 됩니다. 

  

여기서 부사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이 노파가 바로 전생의 자기 어머니였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늙은 어머니 앞에 큰절을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많이 기다렸습니다. 4살 때 어머니를 두고 떠난 그 아들이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하고 유부사도 한참을 울었읍니다.

전생의 모자(母子)였음이 확인된 두 사람은 회한과 사랑으로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목놓아 울어야 했습니다. 


이후 부사는 동래부에서 떠날 때까지 전생의 어머니를 위해 지극한 예를 갖추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 노파는 여생을 편히 살았읍니다.

아울러 동래부사의 백성 사랑은 전생 어머니 대하듯 해서 노인을 공경하며 선정을 베풀어 동래부를 떠나는 날 동래 성내 백성들이 환송하며 세운 선정비가 지금도 보존되고 있으며 부산 박물관에 귀한 자료로 보관되고 있습니다. 


전생의 어머니를 직접 상봉한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회자 되어 전해 오지만 역사적인 기록물과 증거들이 있는 동래부사 유심 이야기가 오리지널이며 다른 지역의 유사한 이야기들은 파생된 설화임을 밝힙니다.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SONY | DSLR-A300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시립박물관에 있는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는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유심선정비는 1649년(효종 원년) 11월부터 1651년(효종 2) 7월까지 동래부사를 역임한 유심(柳沈)의 선정비입니다. 

동래부지의 기록에 의하면 동래부의 7개 면에 모두 선정비가 세워진 동래부사로는 유심이 처음인데, 이는 유심이 동래부사에서 바로 경상감사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며 그의 선정비는 상투적으로 떠날때 만든 것이 아니며 정말로 칭송할만했다고 생각됩니다.


이글은  본인의 글<시니어리포터 정주호>

http://www.yourstage.com/newsinfo/lifeview.aspx?thread=78250 을 사진 보충해서 재편집 한 것이며 남의글을 불펌한 것이 아닙니다.




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