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傳) 중에서도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역사서이지만 불교적 내용이 재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삼국유사 제5권에 보면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이라는 3페이지 분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문을 사진으로 올립니다.

내용은 풀어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지만 결과론 적으로 말한다면 욱면이라는 여자 종이 염불정진해서 서방 불국정토로 산 몸으로 성불해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승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삼국유사(三國遺事)제 4,5권

삼국유사(三國遺事)제 5권ILCA-77M2 | Pattern | 1/40sec | F/5.6 | 22.0mm | ISO-800 | 2017:10:02 11:13:23삼국유사(三國遺事)제 5권


내용은 위와 같지만, 그 과정이 상당히 적나라하고 욱면이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염불 수행을 지극히 해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성불하고 극적인 승천을 하는 내용이 불교국가 신라에서 불자가 가져야 할 평등사상을 잘 이해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ILCA-77M2 | Pattern | 1/30sec | F/5.6 | 20.0mm | ISO-800 | 2017:10:02 11:14:10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제5권에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편을 보면 대략 저자 일연스님은 3페이지를 할애해서 쓴 것인데 내용을 풀어 보면 신라 경덕왕 때 강주(康州)에서 일만일 기도회를 조직하고 절을세워 기도하던중에 한 신자의 여자종이 어려운 고통중에서도 기도 정진하고 살아서 성불하여 여러사람이 보는 가운데 서방 불국정토로 승천한 내용이다. 

어떤 곳에 보면 강주를 한자 剛州라고 말하는데 내가 본 삼국유사 동래 범어사 본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康州(강주)로 쓰여있다.


康州(강주)는 지금의 진주이지만 만약 剛州라고 쓰였다면 지금의 순안인 것이다.


내용 풀이

남자 신자(종을 거느릴 정도의 부유한 사람들) 몇십 명이 서방정토를 정성껏 구하고자 주의 경계에 미타사를 세우고 1만 일 기도를 하는 계를 만든다.


주해:
강주(康州)는 신라시대의 행정 구역 구주(九州)중의 하나인데 지금의 진주(晉州)로 본다.

통일신라때에는 거열주(居列州)라고했으며 문무왕 3년 663때이다,
청주(菁州)로 불릴때는 신문왕 5년 685때이다.
강주(康州)로 불릴때는 경덕왕 16년때이다.
이후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부터 진주(晋州)라고 불린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까지는 강주(康州)라고 하다가 조선때 행정구역 12목으로 나누면서  진주목(晉州牧)이 되었다가 이후 1895년에 진주부(府) 진주면으로 된다.


그 때 계원중의 한사람인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여자 종이 있었고 그 이름이 욱면이다.
욱면은 주인이 기도하러 갈때마다 함께 따라가서 마당에 서서 승려들 염불을 따라서 염불을 했다.


주인은 종 주제에 염불하러 꼬박 꼬박 오는것이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염불하러 오려거든 매일
곡식 두 섬을 다 찧고 염불하라고 한다.


욱면은 불만없이 초저녁에 벌써 다 찧어 놓고 절에 가서 열심이 염불한다.
우리의 속담에 "내 일이 바빠서 큰집 방아 서두른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 속담의 유래가 바로 욱면이 매일 방아찧는다고 빈정대는 사람들에게 한 말인것이다.

욱면은 절 마당에 말뚝을 세워서 두 손바닥을 뚫어 새끼줄로 꿰어 달아매고 합장해서 좌우로 흔들어 자기를 추스리고 염불에 정진했다.


개인생각:
모르긴 해도 욱면의 주인이 나무기둥에 욱면을 매달아서 고통으로 벌 준 것을 좋게 쓴 것인지도 모른다.
욱면은 손바닥을 둟어 묶인째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뒤에 이 주인도 절을 짖고 좋은 불자가 되었기 때문에 좋게 기술한 것으로 생각해 본다. 


기간은 기도한지 약 9년쯤이라고 하는데 하늘에서 "욱면랑(郁面娘)은 당(堂)안으로 들어와서 염불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당시 함께 염불하던 절의 승려들이 듣고 욱면을 당에 들게해서 정진하게 했다.

구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쪽 하늘로 부터 음악소리가 들려오더니 욱면의 몸이 솟구쳐 올라서 집 대들보를 뚫고 나가 서쪽으로 교외(郊外)로 가다가 부처가 되어 연화대(蓮化臺)에 앉아 빛을 발하며 음악소리를 남기고 떠난것이다.


"그 법당(堂)에는 지금도 구멍이 뚫어진 곳이 있다고 한다." 까지만. ..신발 덜어진곳 등..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ILCA-77M2 | Pattern | 1/30sec | F/5.6 | 22.0mm | ISO-800 | 2017:10:02 11:14:48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ILCA-77M2 | Pattern | 1/25sec | F/5.6 | 22.0mm | ISO-800 | 2017:10:02 11:15:01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


삼국유사(三國遺事) 제5권에 있는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 念佛 西昇)을 찾아 본 내용입니다.

좋은 불자가 죽어서 성불하거나 극락왕생 불국정토로 가는경우는 많지만 살아서 육신과 함께 성불하는 극적인 경우는 드뭅니다.

불교국가 신라에서는 몇번 기록으로 나타나는데 욱면낭자의 부처가 된 경우가 가장 드라마틱한 기록입니다.  

여기의 사진은 복사 복제를 불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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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iverWind blogessay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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